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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은 신라 왕의 사연은. U울림통(78)

 고대국가로서 나라 기반을 닦은 신라 법흥왕은 가야 정벌에 나서 영토를 크게 확장해 나간다. 금관가야 구형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아라가야도 정복해 신라의 힘이 경주 남쪽 낙동강 유역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장창호 작가는 전쟁으로 국가 영토를 넓히며 왕권을 굳건히 지켰으나 수많은 피의 대가에 뉘우치는 법흥왕을 연기한다. 왕은 살생을 금지하며 통치권자의 자리도 내려 놓고 머리를 깍고 홀연히 산사로 들어간다. 화려한 궁궐의 삶을 버리고 비구니가 된 왕비 보도부인(保刀夫人)도 이어서 연기한다.   

 법흥왕은 말년에 신라 최초의 국찰 흥륜사(興輪寺)에서 법운(法雲)이란 법명을 얻어 승려가 되고 왕비 보도부인도 신라 최초의 비구니 사찰 영흥사(永興寺)를 짓고 묘법(妙法)이란 법명으로 불가에 귀의한다. 조카이자 외손주인 신라 정복군주 진흥왕도 출가해 흥륜사를 고쳐 짓고 법운(法雲)이란 법명으로 주지승이 되어 불자가 되었다고 한다. 

 귀족들과 끊임 없는 권력 투쟁을 벌이고 전장터를 누비며 탄탄한 통치기반을 닦은 신라 내물왕계 임금 2명이 말년에 연이어 출가하며 지나온 과오를 씻고 절에서 단촐한 삶을 지내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소리 연기:장창호 극작가, 정리: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울산신문 오디오클립 'U울림통' 바로가기 
 ▶ 영상 보기 : 장창호TV [83] 이차돈의 순교 4 - #법륜은 끝없이 구르고

553년 신라 진흥왕이 황룡의 꿈을 꾸고 월성 동쪽에 지으려던 왕궁터에 지었다는 신라 최대의 사찰 황룡사의 절터의 전경.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553년 신라 진흥왕이 황룡의 꿈을 꾸고 월성 동쪽에 지으려던 왕궁터에 지었다는 신라 최대의 사찰 황룡사 절터의 전경. 2020. 1. 3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고구려 승려 아도가 신라에서 가장 처음 지어진 절로 알려진 경주시 사정동 흥륜사(興輪寺)의 절터. 아도가 궁궐에 들어가 공주의 병을 고치자 서라벌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숲인 천경림(天鏡林) 걷어 내고 왕이 지어준 이 절은 진흥왕이 말년에 다시 고쳐 짓고 스스로 삭발하고 승려가 되었다. 문화재청 출처
고구려 승려 아도가 신라에서 가장 처음 지어진 절로 알려진 경주시 사정동 흥륜사(興輪寺)의 절터. 아도가 궁궐에 들어가 공주의 병을 고치자 서라벌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숲인 천경림(天鏡林) 걷어 내고 왕이 지어준 이 절은 진흥왕이 말년에 다시 고쳐 짓고 스스로 삭발하고 승려가 되었다. 문화재청 출처
경주시 성건동 남천 옆에 있는 영묘사지(靈妙寺)에서 출토돼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얼굴 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의 모습. 수막새의 얼굴 형상은 '신라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절은 선덕여왕 때 두두리(頭頭里)라는 귀신이 하룻밤 사이에 연못을 메워 지었다는 전설이 남겨져 있다. 또한 한 겨울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의 개구리 울음에 백제군을 물리친 설화와 선덕여왕을 따르다 불귀신이 된 지귀의 전설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2020. 12. 12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시 성건동 남천 옆에 있는 영묘사지(靈妙寺)에서 출토돼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얼굴 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의 모습. 수막새의 얼굴 형상은 '신라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절은 선덕여왕 때 두두리(頭頭里)라는 귀신이 하룻밤 사이에 연못을 메워 지었다는 전설이 남겨져 있다. 또한 한 겨울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의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듣고 여왕이 오봉산 여근곡에 매복해있던 백제군을 물리친 설화와 선덕여왕을 따르다 불귀신이 된 지귀의 전설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2020. 12. 12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황룡사와 분황사의 가상 복원도. 경주시 출처
가상 복원도를 통해 본 경주 황룡사(왼쪽)와 현존하는 분황사의 모습. 경주시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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