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이영철 울산교육청 서포터즈기자단

코로나19로 힘든 2021년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은 눈이 많이 온다는 대설이다. 집 안에서의 무력한 생활을 달래기 위해 서재에 앉아 연암 박지원 선생의 서간첩을 읽으면서 33통의 편지가 내 안에 울림이 돼 나왔다. 
 
환갑의 나이에 손수 고추장을 담가 보내고 “맛이 있느냐, 없느냐"채근하며 답 없음을 무람하다 꾸짖기도 하고, 자식들 공부에 대한 걱정이 글 가득히 담겨 있기도 하다. 
 
시어머니 없는 며느리의 산후조리에 대한 근심 서린 자애로운 시아버지 모습이, 자식의 안질이 걱정돼 한숨도 못 잤다는 아버지가, 손자의 모습이 보고 싶어 아이의 모습을 세세히 알려 달라는 할아버지의 궁금함이 가슴 뭉클한 따뜻함을 전해줬다. 
 
그의 지극한 가족애를 통해서 다정다감한 인간 연암을 볼 수 있었고, 심사숙고하고 고심하며 글을 짓는 작가로 가슴이 답답할 때면 서화를 홀로 완성하는 그를 그려보게 했다. 
 
“수양을 잘해 마음 넓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 돼라. 쩨쩨한 선비는 되지 말지어라"하면서 자신의 뜻을 전하기도 하고, 자치통감강목을 초록까지 하며 속독하는 것을 알려줘 본이 되게 하는 그는 요즘의 부모에게 교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주변 인물들에 대한 속내도 보여준다. 또 박제가를 무상 무도하다든지 백선을 아둔하고 게으르다 평하기도 하면서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알려준다. 그의 자잘한 일상과 가족관계 집안의 살림살이들을 엿볼 수 있었고, 용골차 종이를 만들고, 인삼을 재배하는 등 실학자의 면이 보이기도 한다.
 
이 서간문 속의 연암은 우리 곁에 있음 직한 친근한 존재로서 우리에게 다가와 아버지로서 근엄하고 자상한가 하면 어떤 때는 자식에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그런 약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소심하게 어떤 때는 호방하게 목민관으로서 백성을 걱정하면서도 사익을 위해 공을 훼손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무료해 기보나 보며 소일하기도 하고 또 고상하고 단아하기 그지없는 선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때론 엄숙하고 때론 해학적인 그의 서간첩은 우리의 선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200년의 시차가 있는 데도 낯설지 않은 사람살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꾸미거나 걸러지지 않은 그의 편지는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선생이 안의 현감으로 있을 때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고을 일을 하는 틈틈이 한가로울 때면 수시로 글을 짓거나 때로는 법첩을 꺼내 놓고 글씨를 쓰기도 하거늘 너희들은 해가 다 가도록 무슨 일을 하느냐? 나는 4년 동안 강목을 골똘히 봤다. 너희들이 하는 일 없이 날을 보내고 어영부영 해를 보내는 걸 생각하면 어찌 몹시 애석하지 않겠니? 한창때 이러면 노년에는 장차 어쩌려고 그러느냐?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를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조선시대 아버지상은 근엄해 마치 석고상을 닮았다고 여겼는데, 면학을 주문하면서 손수 담근 고추장을 전하는 글에서 깊은 정을 맛볼 수 있었다.
 
편지는 하고 싶은 말이나 개인적인 소식을 담기도 하고 상대방의 안부나 친분을 쌓기 위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쓴 글을 말한다. 
 
편지는 읽을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다른 글과의 차이점이다. 편지는 글의 종류상 수필에 속하지만 일정한 형식을 가지며, 예절을 갖추어 써야 하는 실용적인 글이다. 편지의 형식은 서두, 본문, 결말로 나뉘는데, 서두에서는 호칭, 계절 인사, 문안, 자기 안부를 적고, 본문에서는 사연을 밝히며, 결말에서는 끝인사와 날짜, 이름, 서명 등을 넣는다. 
 
편지는 보내는 목적에 따라 다양하며 요즘은 각종 전자 매체의 발달로 편지의 역할을 인터넷 전자 메일, 휴대 전화의 문자 메시지 등이 대신하기도 한다. 
 
내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생각을 하고 준비가 돼야 쓸 수 있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야 비로소 전달이 가능하다. 또 봉투를 개봉하고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어야 보낸 사람의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사랑하는 부모님, 선생님, 연인에게 우표 먹은 손 편지로 사랑의 속삭임이 배달되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