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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세상엔 경계가 없다.
 사람들의 인위적인 땅 나눔은 대륙과 반도를 가르고 그 반도 허리쯤 철책으로 또 155마일을 단절시켰다. 삼엄하거나 견고한 그 물리적인 단절을 새들은 개의치 않는다.
 몽골의 남쪽 초원지대서 삶을 영위하던 독수리들이 2,000여㎞를 건너왔다. 초원을 지나고 산맥을 넘고 강을 건너며 하루에 70여㎞씩 보름간에 걸친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렇게 중단없는 날갯짓으로 찾아온 곳이 울주 범서 입암들이다.  
 
혹독한 겨울 추위에 내몰린 새들의 선택은 생존 영역의 확장이었고, 어떤 연유로 이 반도의 남쪽 끝까지 왔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태초부터 DNA 속에 각인된 치열한 생존의 한 방식인지, 아니면 거듭된 시간 끝에 축적된 학습에 의한 진화인지 증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몇 년 전부터 철원, 파주 등 비무장지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무리들이 점차 남쪽으로 내려와 태화강 중류 들판에 그 터전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여기까지 밀려온 새들은 아직 어리다. 몽골에서 갓 태어난 새끼는 어미를 따라 큰 무리와 함께 중부지역에 자리를 잡고, 먹이 경쟁에서 밀린 1년에서 3년 된 어린 것들이 새로운 곳을 찾아 떠돌다 정착한 것으로 추정한다.
 독수리들의 선택 기준이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울산도 겨울나기가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먹이를 구하지 못해 탈진하거나 오염된 먹이로 인한 목숨을 잃는 일이 자주 목격된다.
 
매서운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지만, 사냥 능력이 없는 이들은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살아가는 초원의 청소부다. 3m에 육박하는 큰 날개로 기류를 이용해 떠다니며, 먹이를 찾기 위해 경남 김해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반경을 가졌다. 
 겁이 많고 순한 성격으로 까치 떼에게도 먹이를 뺏기고, 정수리와 목에 털이 없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이겨낸 최적화된 진화의 결과물이다.
 
울산에 온 독수리는 전 세계적으로 2만여 개체밖에 남아있지 않은 멸종 위기 2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73년 천연기념물 243호로 지정됐다. 
 겨울 한철 시베리아의 매서운 한기를 피해 북풍을 타고 한반도로 내려오는 개체는 2,500여 마리로 추정된다. 범서지역에만 한 해 대략 300여 마리에서 많을 때는 500여 마리까지 관찰된다.
 
울산지역의 눈 밝은 동물단체에서 쇠고기 부산물들을 먹이로 제공해 일시적으로 보호에 나서고 있지만, 그 여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풍요의 땅, 축복의 대지로 독수리들에게 기억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봄이 오면 독수리들은 따뜻해진 남풍에 기대어 몽골 대초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원형질 깊숙이 각인된 울산의 비행경로가 대를 이어 계속되길 기대해 본다.  글=김정규기자 kjk@ 사진=이상억기자 agg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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