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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조례안 집계표
2021 조례안 집계표. 자료제공 : 울산시의회

 울산시의회 의원들의 올 한해 조례 제·개정안 발의가 예년에 비해 유독 두드러졌다. 지자체 입법기관인 시의원들의 활발한 자치법규 입법화는 지방의회 기능 활성화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고, 또 권장할 사안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생활·복리와 직결된 법규를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나 전문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형식적 절차만 거쳐 입법화할 경우 행정에 부담만 안긴 채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올 한해동안 쏟아진 의원 발의 조례안이 특정 기관이나 단체와 이해관계가 물린 민원 해결의 성격이 짙거나,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의정활동 실적을 쌓으려는 의도가 깔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30일 울산시의회가 집계한 2021년도 조례안 처리 현황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원포인트로 열린 1월의 제219회 임시회 땐 '울산시 긴급 재난지원금 지원 조례안'과 '울산시 보육재난지원금 지원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등 4건에 불과했다. 반면, 2월부터 열린 임시회와 정례회에선 가히 '조례안 폭탄'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의원 발의 조례안이 쇄도했다.

제220회 임시회에선 모두 27건의 조례 제·개정안이 처리됐는데, 이 가운데 시장과 교육감이 제출한 7건을 제외한 20건이 의원 발의였다. 이어 4월에 열린 제221회 임시회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처리된 조례안은 모두 28건에 달했고, 이 중 시장 11건과 교육감 2건을 제외한 15건이 의원 발의 조례안이었다. 또 2020회계연도 결산을 위해 6월에 열린 제222회 제1차 정례회 때도 모두 30건의 조례안이 처리됐는데, 이 중 시장 7건과 교육감 1건을 제외한 22건이 의원 발의로 상정돼 처리됐다.

이어진 올 하반기 회기에서도 '조례안 폭탄'은 계속됐다. 7월에 열인 제223회 임시회에서 처리된 모두 18건의 조례안 중 10건이 의원 발의였고, 9월 제225회 임시회 땐 총 29건 중 시장 6건을 제외한 23건의 조례안을 의원들이 발의했다. 또 10월 제225회 임시회에는 모두 18건의 조례안 중 시장 5건과 교육감 1건을 제외한 12건이 의원 발의였고, 올해 마지막 회기인 제226회 제2차 정례회에선 무려 59건의 조례안이 처리됐는데, 이 가운데 시장 23건과 교육감 6건을 제외한 30건이 의원 발의였다.

결국 올해 8차례의 시의회 공식 회기동안 처리된 총 213건의 조례안 중 의원발의 조례안은 절반을 훌쩍 넘긴 135건에 달했다. 예년의 경우 통상적으로 연말 정례회를 제외한 임시회에 제출되는 조례안은 많아야 10건 안팎인데 비해 올해는 1월 임시회를 제외한 7차례의 회기에선 2~3배가 넘는 조례안이 무더기로 처리된 셈이다.

조례안의 의원 발의를 주도한 쪽은 수적으로 우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었고,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조례안 발의 실적에선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보다 민주당 의원들의 입법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까. 물론 아니다. 그 첫 번째 원인은 내년 지방선거에 있다. 시의회 전체 의석 22석 중 17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 후보 공천과 직결된 현역 시의원 평가에 조례 발의 실적을 기준으로 삼은 탓이다.

문제는 매 회기 때마다 쏟아진 각종 조례 제·개정안이 전체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지역 발전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특정단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민원성 조례'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이다. 조례를 발의한 의원의 입장에선 다른 시·도의 유사 조례를 베끼는 수준으로 만들어주면 단체나 집단의 지지를 얻는 동시에 의정활동 실적까지 쌓을 수 있으니 '1석2조'의 효과를 얻는 셈이다.

물론 올 한해동안 의원 발의된 조례안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조례안이 특정 주민의 민원 해결이나 단체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조례 발의의 취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조례 제·개정 취지가 빗나가면서 입법화 절차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조례안 폭탄과 맞물려 한 해동안 시의원들은 너도나도 '간담회 정치'를 벌였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특정 조례를 만들기 위한 수순밟기인데, 관련기관이나 단체, 업체 대표와 관계공무원을 불러 의견을 듣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전부다.

집행기관에선 조례 제·개정을 위해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전 입법심의회를 거쳐 의견수렴을 위한 입법예고 기간을 거친 뒤 재검토를 거쳐 의회에 제출하는데 비해 의원 발의는 제대로 된 숙려기간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의회 심사로 직행할 수 있는 일종의 특례 때문에 입법 취지나 내용이 부실할 수 있는 개연성이 그만큼 높은 게 현실이다. 때문에 올해 접수된 조례안 중 상임위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한 조례안이 속출했다. 올 한해 시의회가 처리한 총 213건의 조례안 중 원안가결된 것은 173건이고, 나머지 40건 중 수정가결 28건, 심사보류 4건, 부결 2건, 미상정 5건, 철회 1건이다.  올 한해 시의회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경쟁적인 조례 양산에 대해 시민사회에서 '제빵공장에서 빵을 찍어내듯 조례를 찍어내고 있다'는 비판론에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성환기자 csh9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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