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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 수필가
이선호 수필가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은 낱알처럼 우리 삶 속에 곳곳에 깊이 배어 있다. 의도한 목적을 이루어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 우리는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 기다림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있을까. 기다림이란 무책임의 선을 넘어 절대적 의무를 지키는 여유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성취의 시발점이자 숙성기간인 기다림의 위대한 가치와 미덕을 놓치고 산다.

 무료하다고, 지루하다고, 짜증난다고 기다려야 하는 여유를 잃고 산다. 일상에서 볼일을 보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는 다반사다. 그것이 삶이다. 그래서 삶은 더 진지하고 기다림과 함께 영글어 간다. 삶을 제대로 살려면 기다리는 법부터 배워야한다. 인내의 쓴맛에서 결실의 단맛이 나온다. 기다림에 대한 인내심이나 의지가 부족하면 일을 망치거나 도중에 포기하여 뜻을 이룰 수 없다.

 기다려야만 하고자 하는 일과 이루고자 하는 목적과 가고자하는 행선지까지 갈 수 있다. 은행에서는 번호표를 뽑고 한동안 순서가 오기를 기다려야 볼일을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도 무작정 기다려야 가고자 하는 층까지 갈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달린 후 짧은 시간 맛보는 관광 명소 구경은 기막히다. 북미의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추어 서서 뒤에 쳐진 영혼을 기다린다. 항우가 자결하지 않고 권토중래했더라면 역사는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이규태 주필은 이렇게 한국인들이 못 기다리는 버릇은 기후 탓이라고 말한다. 유럽은 기후가 온화하여 보리가 익은 후에도 한두 달 동안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수확해도 된다. 그러나 한국의 기후풍토에서는 수확을 기다렸다가는 서리가 내리고 물이 차가워져 낙곡이 되어 1년 농사를 망치기에 기다릴 여유가 없다. 넓지 않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옥신각신 살다보니 경쟁이 심하다. 기다렸다가는 낙후되고 도태되고 손해 보기 쉬워 일단 서두르고 본다.

 변화무쌍한 기후에서 기인한 한국인의 서두름은 눈치가 빠르고 적당주의와 임기웅변 그리고 빨리빨리 문화를 낳았고 그 속에는 기다림의 미덕이 결여되어 있다. 중동이나 서구 또는 중국의 거리에서 달리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차량 경적 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한국인 열 발자국 걸을 때 다섯 발자국 걸을 정도로 유유자적하고 안단테다. 우리는 비바체다. 느리게 사는 것과 기다림은 일맥상통한다.

 기다림은 무료함이 아니라 충전과 숙고의 기회로 삼이야 하지 않을까. 몸이 약한 사람이 한 번 시작한 일을 뿌리 뽑기 위해 온 에너지와 힘을 동원한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생체 리듬이 깨져 그로 인해 병이 나고 몸이 망가졌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도중에 힘이 들면 잠시 몸을 멈추고 몸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며 체력 충전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이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전진을 위한 멈춤이라 자신을 잠시 멈추고 몸과 정신을 재무장하는 시간이다.

 빌게이츠가 캐주얼복장으로 시애틀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3,800원 짜리 햄버거를 사기 위해서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기다림의 철학이 몸에 배인 그의 행동은 신선한 충격이다. 한국의 재벌 총수 중에 이렇게 소탈함을 용기 있게 몸소 보여주며 줄에 서 본 적이 있었는가. 권위와 체통을 생명처럼 여기는 우리나라의 사회 지도층, 부유층들이 과연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소신이 있을까.

 태양의 따뜻함을 느끼려면 8분을 기다려야한다. 맛있는 밥을 먹으려면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낮을 기다려야 밤의 찬란한 별빛을 볼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과 불만의 대부분은 기다려주지 못하는 조급함 때문이다. 여행은 떠나기 전 기다림 속에서 가슴이 더 설렌다. 기다림과 마주함 사이의 고통은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기다림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리움이자 바쁜 현대인이 견뎌내야할 여유로움이다.

 세상 무너지는 것처럼, 자신이 지구에서 사라질 것처럼 불만을 토로하고 보채지 말고 서둘지 말자. Haste makes waste다. 빛나는 역사적 결실을 맺자면 차분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류의 문명은 열정, 탐구정신 그리고 기다림이란 것에서 탄생했다. 기다리는 것도 실력이다. 진짜 기다림이란 꿈을 품고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미덕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행복과 기쁨은 기다림과 함께 영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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