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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환 한국해비타트 울산지회 홍보대사·세무법인 충정 울산지사 회장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중에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있다. 세계의 다양한 도시들을 여행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 삶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색다른 재미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이 인기의 요인인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요즘 시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에 방영된 스페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품다-네팔' 편이 필자에게는 또 다른 감동으로 남아있다. 히말라야 관광의 기점인 카트만두에서부터 웅장하고 눈부신 설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이어지는 장관에 순간순간 압도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실제로 살아 숨 쉬는 대자연을 따라 걸어가는 여행자가 된 듯했다. 
 

수많은 신을 섬기며 자연과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네팔의 모습은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워낙에 잘 알려진 곳이라 그런지 친숙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뇌리에 남는 것은 담당 PD가 산 중턱에서 만난 어린 셀파와 동행하는 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셀파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힘든 노동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날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셀파는 8살된 어린 아이였다. 감히 8살 짜리가 이런 고된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필자가 어릴적 보낸 보릿고개 시절 뗏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에다 옷 소매는 콧물이 엉켜 붙어 딱딱했던 연판 그 모습이였다. 카메라 앞에서도 당연한 듯 한줌 부끄러움도 없었다. 담당PD는 과거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던 때에 만났던 또 다른 어린 셀파를 떠올리며 코도 풀어주고 손도 닦아 줬다. 과거에 만났던 그 어린 셀파는 엄마도 없었고 아빠는 노름빚으로 공사판에 팔려갔다는 사실을 알고선 베이스캠프로 데려가 잠시 보살펴 줬다고 회상했다. 
 
이날도 PD는 어린 셀파의 짐을 들어주면서 아이가 사는 집으로 함께 가보았다. 하지만 닳아해진 옷만큼이나 초라한 상태였고 온갖 집기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의 초라한 집이었다. 아이가 반찬도 없는 맨밥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 PD는 음료수 캔 두 개를 건네줬다. 아이는 음료수를 마시며 세상을 다 산 것처럼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가슴이 무척 아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며 자신의 꿈을 키우는 어린애들이 어디 이뿐일까? 이날은 또 다른 감정이 샘솟았다. 
 
요즘 아프리카의 굶주린 영유아나 국내의 불우한 환경에 처한 어린이를 위한 모금 광고가 부쩍 눈에 띈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금 활동 참여를 독려하는 취지일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곤경에 처한 어린 아이들을 보면 절로 '측은지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나잇값을 하며 살고 있는지, 올바른 어른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건 엄연히 다른 법이기에 하는 소리다.
 

무엇보다 이번 TV프로그램 속의 어린 셀파를 보면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된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삶은 비록 팍팍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같이 시간을 보낼 친구와 동료가 있어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건강이 바쳐주니 더할 나위 없음이 분명해졌다. 한편으로는 또 '우리'라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나게 해줬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사람도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느끼게 해줬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우리를 더욱 울가망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련 속에서도 희망의 빛이 명확해지는 건 바로 많은 사람들이 더 어려운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조화로운 사회'의 바탕이 되는 법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주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똑같은 것이라도 밝게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올 한 해가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설 명절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 설은 코로나19 확산세에 놓여 있는데다 장바구니 물가까지 치솟아 소외계층들의 마음은 더 무거울 게 틀림없다. 이래저래 우울한 분위기지만 실제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는 어렵고, 불행하고, 불만족스러울 때 도래한다는 선조들의 조언을 믿고 싶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올바른 기부를 실천하고 소확행의 기쁨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나눔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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