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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수필가
이지원 수필가

새해가 밝았다. 소통하며 지내는 커뮤니티에서 새해 소망을 나누게 됐는데 다들 비슷비슷하고 상투적인, 그러나 가장 중요한 소망을 말했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건강'이었다. 그런 중에 눈에 띄는 소망 하나가 있었다. '텀블러 그만 사기'였다. 그이는 일명 별다방이라고 불리는 스타**의 덕후로 특히 그곳에서 새로 나오는 텀블러를 빠짐없이 샀던 모양이다. 얼마나 샀으면 '텀블러 그만 사기'가 새해 소망이 됐을까?  

요즘은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텀블러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주방 서랍마다 굴러다니는 장바구니처럼 텀블러 또한 내남없이 몇 개씩은 가지고 있다. 행사 기념품으로 나눠 주는 곳이 많아서 처음에는 주는 대로 받아 왔지만 언젠가부터 받지 않았다. 

텀블러는 일반 컵보다 크기 때문에 장바구니만큼 소지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텀블러 실사용 비율은 30%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좀 편하자고 일회용품을 쓰고 싶지 않아 나는 에코 백에 텀블러를 넣어 다닌다. 좀은 귀찮고 잘 챙겨지지 않지만 환경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에 기꺼이 실천하려고 애를 쓴다. 모든 사람이 동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많은 사람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카페에 텀블러를 가지고 가면 커피 값을 몇백 원 할인해 주는 곳들이 있다. 별다방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위해, 환경을 위해 좋은 일이라 흐뭇한 마음이 되는 것은 물론이며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환경 지킴이로 좋은 기업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도 사실이다.

텀블러는 주로 스테인리스 재질이라 깨질 염려도 없고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여러 개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별다방에서는 시즌마다 신박한 아이템으로 새로운 텀블러를 선보인다. 별다방 덕후들은 신제품이 나오기 무섭게 곧바로 텀블러를 새것으로 개비한다. 그럼 전에 사용하던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주방의 전시용품이 되기 십상이며 시간이 흐르면 쉽게 버리지도 못하는 '예쁜 쓰레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고 소장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일단 환경적인 차원에서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것이다. 

텀블러뿐일까? 물질이 풍부해진 탓에 집안에 사용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나의 새해 소망은 몇 해 전부터 '가볍게 살자' 정도다. 용도가 같은 물건은 한 가지 이상 가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살 때도 신중해지는 자신을 보곤 한다. 그러한데도 집안에는 불필요한 물건이 자꾸 쌓인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텀블러를 사용하게 하는 본질은 어디 가고 '윤리적인 척' '지속가능한 환경 살리기에 동참하는 척'하는 '그린 워싱'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시즌마다 신상품으로 소비자를 유혹해 지속적으로 텀블러를 구매하게 하는 이중성은 과연 환경을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텀블러 제조과정은 일회용 컵을 만들 때보다 온실가스 등과 같은 환경오염 물질을 더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는 말은 본질이 전도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더 쉽게 말하면 주객이 바뀐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 굴지의 커피 제조업체 카누 굿즈 마케팅도 비판을 받고 있다. 10년 전 카누 브랜드를 선보인 후 130여 종에 달하는 굿즈(머그컵과 텀블러)를 내놨다. 월 단위로 환산하면 매월 하나씩 새로운 굿즈를 내놓은 셈이다. 지나친 사은품 행사를 하며 소비를 촉진 시킨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는 굿즈를 자주 만들어 커피를 사면 끼워 준다. 앙증맞고 예쁜 굿즈를 가지기 위해 아직 남아 있는 커피를 두고 또 커피를 구매하게 하는 것이다. 예쁜 단추 때문에 원피스를 사는 격이다.  

돈을 주고 산 적이 없는 텀블러가 우리 집 주방에도 많이 있다. 선물 받은 것, 행사장에서 받은 것, 애들이 쓰다가 두고 간 것,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것 등인데 하나만 있어도 되니 어떤 것은 깨소금 통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새해 소망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건강'을 위해서라도 가볍게 살 필요가 있다. 하여 똑똑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 가짜 '친환경러'는 되지 말아야 하니까. '텀블러 그만 사기'를 말한 그이도 아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새해 소망으로 올려놓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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