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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 프로그래머
조환 프로그래머

2022년 1월 19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액티비전 블리자드(ATVI)라는 게임회사를 무려 80조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인수했다. MS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윈도, 오피스로 익숙한 회사다. 반면 ATVI 는 국민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 제작사 블리자드 외에는 그다지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의외지만 이 인수 가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블리자드가 아니라 액티비전과 킹닷컴이다. ATVI 의 2021년 한해 영업이익 10조원 중 블리자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인수전은 메타버스 시대를 대비하는 MS의 중요한 결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MS의 약점이었던 엔터테인먼트 유통 사업부문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MS는 이미 운영체제(소프트웨어)와 이를 구동할 공간(클라우드)를 확보해 뒀다. 초연결 시대에 발맞춰 다양하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제공해 1등 기업이 되겠다는, 그들의 거침없는 야심의 값이 80조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요즘 메타버스라는 말이 화두다. 뜬구름 잡는 소리에 80조라는 거액이 들어갈 정도로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메타버스를 이해하기엔 말이 너무 어렵다. 왜냐면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등장한 지 불과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 다양한 해석과 구현들이 난무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해 인간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이 가능한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라는 정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동의한다.

2022년 현재 발 빠른 기업들은 자신들이 구현한 온라인 가상공간에 메타버스라는 키워드를 붙인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메타버스는 아주 좁은 의미만을 구현한 것으로 대부분 큰 기술적, 사회적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제품들은 대부분 기껏해야 가상공간 탐험, 가상 선생님과 함께 공부 정도의 한정된 경험만을 제공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보다는 오히려 중독물질, 암덩어리 같은 오명을 뒤집어 쓴 온라인 게임이야말로 메타버스를 훌륭하게 구현한 제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등장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온라인 게임은 등장 초창기부터 놀이, 금융활동, 연애와 결혼, 전쟁 같은 다양한 상호작용을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의 상호작용이 오프라인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온라인으로부터 시작한 오프라인의 각종 행사나 사건 등은 이제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사회 현상이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만이 올바른 메타버스 제품이라는 속단은 금물이다. 메타버스를 완전히 구현한 세상은 2000년 초반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와 같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등장인물 '네오'처럼 오감을 모두 경험할 수 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동이 자유로운 세계가 진정한 메타버스 세계다.

주목할 점은 그런 세계에서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인간관계다. 메타버스든 아니든 그 생태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인간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캐릭터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서로 관계를 맺는다. 이는 우리 인간이 태초부터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기계가 아닌 이상, 혼자서 살아남는 인간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설령 정신을 완전히 인터넷에 업로드 하더라도 우리가 정의하는 인간성이 존재하는 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공멸을 피하고 서로 조화롭게 살아갈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우리는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이런 지식들을 철학, 역사, 언어, 종교 등으로 세분화시켰으며, 이를 발전시켜 왔다. 메타버스 시대일수록 이런 인문학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낯선 사람과, 심지어 외국인과 만날 기회가 훨씬 더 늘어날 뿐더러, 평판 관리가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초연결 시대에는 우리의 물질적 자산뿐 아니라 평판, 경험 같은 무형의 가치도 디지털 자산으로 기록 및 공유된다.

인문학은 이런 인간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지혜를 수천 년간 쌓아왔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다가오는 메타버스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지식을 인문학으로부터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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