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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산 성모굴.
화장산 성모굴.

필자는 지난 1980년부터 최근까지 영남알프스 주변의 산과 계곡, 전설의 현장을 직접 찾아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다니기를 수없이 거듭했다. 그곳에 거주하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서 직접들은 이야기들을 채록하기도 하고, 곳곳에 전해지는 폭포, 바위, 고갯마루, 동굴, 산골짜기 등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어 '인간의 삶은 이야기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수집한 이야기들을 글로 수록하여 모은 것들은 40~50여 편에 남짓하다. 곳곳을 찾아다니며 전설을 채록하고 전설의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정작 전설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세상을 뜨면 전설의 증거물들이 잊혀 지거나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미진 계곡을 따라 걸어가야 했고, 가파른 너덜겅을 찾아 헤매기도 했지만, 전설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이번 영남알프스 주변에 전승되어 오고 있는 이야기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와 상북면 향산리에 걸쳐있는 화장산은 언양 도심에서 북쪽으로 빤히 올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이다. 산 동쪽 8부 능선에는 굴암사(屈岩寺)라는 석굴이 있다. 화장산에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언양과 상북에 걸쳐있는 야트막한 산
불교와 천주교 공존하는 진귀한 풍경
병든 신라 소지왕 살린 도화꽃 전설
사냥꾼 네 가족의 슬픈 이야기 품어

 
# 도화(桃花)의 설화
신라 21대 소지왕이 병이 들어 지천에 좋은 명약을 다 써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궁궐 안은 온통 수심이 가득하였고 백성들도 임금의 병이 빨리 쾌차하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가 흰 눈이 자욱이 깔린 곳에 '꽃이 피어 있는 곳'을 찾아 헤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엄동설한인 데다 궁궐 안팎은 물론 세상은 온통 흰 눈이 쌓여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비는 눈을 뜨자마자 용한 복자(卜者:점쟁이)를 불러 물었더니 임금님의 병에 도화(桃花·복숭아 꽃)를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한 겨울이라 꽃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을 찾기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임금의 병환은 날로 악화하여서 왕비의 마음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있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왕비는 임금께 도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왕비의 말을 들은 임금 자신도 왕비와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이었다. 

 왕은 즉시 사자(使者)를 전국 방방곡곡으로 보내 도화를 찾게 하였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남쪽으로 가다가 언양 고을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언양 읍성 남문 부근에 사자가 이르렀을 때였다. 문득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는 순간 화장산 부근에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었다. 사자는 급히 말 머리를 돌려 그곳으로 올라가 보니 큰 바위굴 앞 양지바른 곳에 두 그루의 복숭아꽃이 곱게 피어 있는 것이었다. 사방이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었고 새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한적한 곳에 복숭아꽃을 발견한 사자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자기의 눈을 의심한 나머지 자신의 볼과 다리를 꼬집어보기도 하였으나 복숭아꽃이 분명한 것을 알았다. 조심스레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황급히 말을 달려 궁성으로 들어갔다. 사자는 병상에 누운 임금께 다가가 언양(彦陽) 땅에 피어 있는 도화 꽃을 찾아 올리니 드시고 '어서 쾌차하시어 정사를 돌보소서. 하고 아뢰었다. 이 도화를 먹은 임금은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 한다. 후일, 이 소식이 언양 땅까지 전해져 산 이름을 화장산(花藏山)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화장산 굴암사 법당.
화장산 굴암사 법당.

# 오누이의 혼백이 소나무와 대나무가 되다
또 다른 전설은 다음과 같다. 
 신라 때 화장산 근처에는 오누이를 둔 이름난 사냥꾼 내외가 살고 있었다. 사냥꾼은 창을 잘 다루고,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 세상에 무서울 게 없을 정도로 용감한 사나이였다. 틈만 나면 가까운 산이나 곰이 자주 출현한다는 고헌산 곰지골(※)이나 오두산, 밝얼산으로 사냥을 갔다 오곤 했다. 활을 잘 쏘는 탓에 매번 사냥을 갔다 올 때마다 토끼, 노루, 꿩 등을 잡아 빈손으로 오는 날은 거의 없을 정도로 사냥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세월은 흘러 어느 해 겨울 첫눈이 내린 이후로 눈은 그칠 줄 모르고 사흘 이상 계속 이어졌다. 폭설로 산천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좀처럼 눈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냥꾼은 끼니가 걱정되었다. 이렇게 이삼일만 더 눈이 내리면 영락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발이 약간 약해지면 사냥을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냥꾼은 활과 창을 챙겨 가까운 화장산으로 사냥을 나갔다. 사방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고 보이는 것은 모두 흰 눈밖에 없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뚫고 사냥꾼이 화장산 기슭에 도착하자 어디선가 마구 짖어대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냥꾼은 까마귀 울음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는 하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늘은 기필코 사냥을 해야만 아내와 자식들의 배를 굶기지 않을 것만 생각했다. 그는 화장산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사냥감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얼마 전에도 사냥을 다녀왔던 곳이라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지만 그리 낯선 곳은 아니었다. 굴(窟)바위 부근에 도착해서 사방을 살펴보기로 했다. 한숨을 고른 뒤 사냥감을 찾으려는 순간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황소보다 큰 곰 한 마리가 사냥꾼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곰도 오랫동안 내린 눈으로 먹잇감을 구하지 못하여 굶주린 탓에 사냥꾼을 보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단숨에 사냥꾼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냥꾼이 활을 쏘고 창을 쓸 틈도 없이 곰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한편 부인은 아침 일찍 사냥을 나간 남편이 해가 다 되어가도 돌아오지 않자 남편의 발자국을 따라 집을 나섰다. 남편의 발자국을 따라 화장산 굴 바위 부근에 도착한 부인은 남편이 입고 간 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것과 핏자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부인은 남편이 산짐승에게 변을 당했구나! 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남편을 잡아먹은 곰이 굶주린 허기를 다 채우지 못했던지 부인에게 달려들어 부인도 잡아먹어 버렸다. 집에서 며칠을 굶주렸던 오누이는 사냥 나간 아버지와 어머니가 며칠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부모를 찾아가기로 했다. 이튿날 새벽 눈보라가 다소 잦아들었다. 오누이는 어머니가 간 발자국을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산속을 헤맸다. 산은 점점 깊어져 갔고 바람도 세차게 몰아쳤다. 오누이도 눈 속에서 헤매느라 기진맥진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희미해져 가는 발자국만 따라 올라갔다. 그러다가 오누이가 도착한 곳이 화장산 굴 바위 부근이었다. 굴 입구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옷가지와 신발이 갈기갈기 찢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아버지가 평소 아끼던 활과 창도 나뒹굴어져 있었다. 며칠을 굶주린 탓에 겁에 질린 오누이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 그 자리에 앉아 가엾게도 얼어 죽고 말았다. 이렇게 불쌍하게 얼어 죽은 오누이의 혼백은 두 그루의 도화(桃花)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이와 달리 전해지는 이야기는 죽은 오누이의 혼백은 후일 오빠의 정령(精靈)은 대(竹)나무가 되고, 누이의 혼(魂)은 소(松)나무가 되어 만고에 푸르렀다고 전해져 온다. 

 이러한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몇 해 전 화장산 일원에 대형 산불이 휩쓸고 가기 전까지만 하여도 언양 성당에서 화장산 굴암사로 올라가는 능선 좌·우로 나무의 수종은 둘로 나누어져 있었다. 오른쪽은 수백 년을 지켜온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푸르름을 이루었고, 왼쪽 능선은 대나무 숲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진희영 산악인
진희영 산악인

 

# 불교(佛敎)와 천주교(天主敎)가 공존하는 곳
화장산은 불교와 천주교가 둘로 나누어져 공존하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화장산 동남쪽을 기준으로 산언저리에는 두 개의 동굴이 있다. 위쪽, 오른쪽 동굴 굴암사(窟岩寺)에는 석가모니 부처상이 모셔져 있어 불교 성지라 할 수 있고, 왼쪽 아래 동굴(일명:성 모굴)에는 언양 천주교성당 소유 성모마리아 상이 모셔져 있어 천주교 성지라 할 수 있다. 또한, 화장산 정상부근에는 죽은 망자들의 무덤들이 서로 상존해있다. 수십 수백 개의 무덤 중 반은 무덤 앞 묘비에 십자가(十字架) 표시가 없는 무덤이고, 반은 십자가(十字架) 표시가 있는 망자들의 무덤들이다. 그때의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화장산 남쪽 중앙 능선을 기준으로 서로 양분이 되어 자라고 있는 소나무와 대나무 군락이 기이하고, 정상부근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십자가(十字架) 표시가 없는 무덤과 십자가(十字架) 표시가 있는 무덤 또한, 기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 곰지골   언양에서 24번 지방도로를 따라 석남사 방면으로 가다 보면 궁근정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이 고헌산이고 오른쪽 골짜기가 곰지골이라 부른다. 곰지골의 지명은 옛날 이곳에 곰(熊)이 자주 출현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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