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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흥륜사의 벽화, 보현보살
흥륜사의 벽화, 보현보살. U울림통(87)

 신라 제54대 경명왕 때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興輪寺)에 큰 불로 절의 남문과 건물 2동이 불타버렸다.

 흥륜사는 신라 미추왕때 고구려 승려 아도가 성국공주(成國公主)의 병을 낫게하고 처음 지어졌으나 곧 폐허가 되었다.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 땅에 불교가 공인되자 진흥왕이 경주 탑동 오릉(五陵)과 봉황대 사이에 다시 지은 신라 최초의 사찰인데 까닭 없이 화재가 난 것이다. 스님들은 불자들과 부호(富豪)들을 만나 사찰 복원를 위해 서라벌을 동분서주했다. 왕도 불이 난 사찰을 찾으나 차 공양만 받고 불사(佛事)에 대한 아무런 도움을 주질 않는다.

 안타까운 사연에 하늘이 감탄했는지 불경에 나오는 수미산 앞 도리천의 임금 '제석(帝釋)'이 나타나 사찰 내 불경(佛經)을 보관하던 좌경루(左經樓)에 머물렀다. 그러자 절 남쪽 연못 속의 물고기들이 물 밖으로 날뛰고 하늘에서 찬란한 오색구름이 몰려 들었다.

 절 밖으로 이 사실은 삽시간에 퍼져 불사를 위한 신라인들의 보시(布施)가 이어진다. 곡식에서 비단. 보물 등 다양한 재물이 절에 쌓이는가 하면 절로 찾아든 능숙한 건축 기능공들이 옷소매를 걷어 붙이더니 하루 만에 남문과 건물 2동을 다시 지었다.

 절에 10여일 머물던 제석(帝釋)이 수미산(須彌山)으로 돌아가려 하자 스님들이 인사하며 제석의 그림을 그려 은혜를 잊지 않고 기리겠다 한다. 이에 제석은 보현보살상을 그려 걸고 공양하라 한다. 훗날 스님들은 법당 벽면에 보현보살을 그려 넣었다고 전한다. 소리 연기 : 장창호 극작가, 정리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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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창호 [108] 흥륜사의 벽화, 보현보살

 

1980년대 지어진 경주시 사정동 흥륜사의 전경(2015. 문화재청 제공). 신라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웃는 사람 얼굴 모양의 수막새와 '영묘사'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터로 추정되고 있다.
 1980년대 지어진 경주시 사정동 흥륜사의 전경. (2015. 문화재청 제공)
 신라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웃는 사람 얼굴 모양의 수막새와 '영묘사'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터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 승려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 도갑사(道岬寺)의 해탈문(1962년 국보 지정)에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보현동자상(왼쪽, 보물)과 문수동자상(보물) 모습. (사진 제공 : 문화재청)  1960년 해탈문을 해체.복원하면서 발견된 상량문에서 조선 초 성종 4년 1473년 해탈문(국보)을 지으면서 석가모니 협시보살인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의 목조 동자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하얀 코끼리 등을 타고 있는 높이 1.8m의 보현동자상과 푸른 사자 등을 타고 있는 높이 1.1m의 문수동자상이다. 2개의 목조상은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인 조형미에 화려한 채색이 뛰어난 흔치 않은 유물로 1992년 각각 보물로 지정되었다. 1988년과 1997년에 2차례 도난 위기를 맞으면서 해탈문의 2개 목조 동자상은 고증을 거치지 않고 어설프게 만들어진 복제품이 그자리를 대신하고 진품은 사찰내 도선국사 성보박물관의 유리상자로 옮겨져 전시중이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신라 승려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 도갑사(道岬寺)의 해탈문에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보현동자상(왼쪽)과 문수동자상의 모습. (사진 제공 : 문화재청)
 1960년 해탈문을 해체.복원하면서 발견된 상량문에서 조선 초 성종 4년 1473년 해탈문(1962년 국보 지정)을 지으면서 석가모니 협시보살인 보현동자상과 문수동자상 등 2개의 목조동자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해탈문 좌.우에 안치된 높이 1.8m의 목조동자상은 하얀 코끼리 등을 타고 있는 보현동자상과 푸른 사자 등을 타고 있는 문수동자상이다. 2개의 목조상은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인 조형미에 화려한 채색이 뛰어난 흔치 않은 유물로 1992년 각각 보물로 지정되었다. 1988년과 1997년에 2차례 도난 위기를 맞으면서 해탈문의 2개 목조동자상은 고증을 거치지 않고 어설프게 만들어진 복제품이 그자리를 대신하고 진품은 사찰내 도선국사 성보박물관의 유리상자로 옮겨져 전시중이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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