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사라진 만파식적을 되찾은 곳, 백률사
[오디오클립] 사라진 만파식적을 되찾은 곳, 백률사
  • 장창호 극작가, 김동균 기자
  • 2022.02.2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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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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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울림통] 장창호가 들려주는 삼국유사 (89)
사라진 만파식적을 되찾은 곳, 백률사. U울림통(89)

 

신문왕의 아들 효소왕은 낭도가 1천여명이 따르던 화랑 부례랑(夫禮郎)을 대표 화랑 국선(國仙)으로 삼았다. 

 부례랑은 자신을 따르던 많은 낭도 중 안상(安常)을 가장 아껴 수제자로 삼는다. 어느날 그는 낭도들을 거느리고 금란(金蘭, 강원도 통천)지역에 유랑을 떠났다가 급습한 말갈족에 붙잡혀 납치를 당하고 만다. 낭도들은 유목 민족 말갈의 거친 칼날에 혼비백산해 모두 도망갔는데 오직 안상만이 부례랑을 구하려 말갈땅을 향한다. 뒤늦게 나라도 부례랑을 구하려 신문왕이 물려준 신비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의 힘을 빌리려 한다.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았으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장마엔 비가 그쳐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만파식적은 신라가 애지중지 여기던 국보였다. 그러나 나라 보물을 보관하는 서라벌 월성(月城) 창고인 천존고(天尊庫) 위로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만파식적과 거문고가 없어졌다. 효소왕은 사라진 보물을 되찾기 위해 1년치 세금을 현상금으로 내걸었다. 아들을 잃고 애타는 부례랑의 부모는 관음도량(觀音道場) 백률사(柏栗寺)를 찾았다. 관음보살상 앞에서 여러날 절을 하고 나니 향이 놓인 탁자 위에 만파식적과 거문고가 놓여 있었다. 이어서 말갈에 끌려간 부례랑과 안상도 불상 뒤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좌초지종을 들어 보니 적국에 붙잡힌 부례랑은 적국의 장군 집에서 목동으로 일하며 있었는데 한 스님이 찾아와 '고향 갈 생각이 없느냐'고 묻기에 그를 따라 나서 바닷가에 이르니 그곳에서 안상을 만났다. 스님은 만파식적을 둘로 쪼개 부례랑과 안상에게 주고 자신은 거문고을 타더니 어느새 고국땅 서라벌 북쪽 소금강산자락의 백률사로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은 이 스님을 관음보살의 현신(現身)으로 보았고 크게 기뻐한 효소왕은 관음대비상이 있는 백률사에 큰 시주를 내리고 백성들은 3년간 세금을 면제하고 죄인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또 안상과 안상의 아버지에게도 큰 벼슬을 내렸다. 또 왕은 신령스런 피리 만파식적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불렀다. 

 장창호 작가는 신라 삼소관음처 중 중생사에 이어 두번째 사찰 백률사의 관음보살 전설을 소리 연기로 펼치고 있다. 소리 연기 : 장창호 극작가, 정리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울산신문 오디오클립 'U울림통' 바로가기 
 ▶ 영상 보기 : 장창호 [110] 백률사 

 

신라 왕경의 오악(五嶽)중 북악이라 불린 경주 용강동 소금강산(해발 176m)과 산 중턱에 자리한 동천동 백률사(柏栗寺)의 모습. 산 아래로 경주 주요 시가지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2022. 2. 1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신라 왕경의 오악(五嶽)중 북악이라 불린 경주 용강동 소금강산(해발 176m)과 산 중턱에 자리한 동천동 백률사(柏栗寺)의 모습. 산 아래 서쪽으로 경주 주요 시가지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2022. 2. 1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사찰 입구에서 바라본 경주 동천동 백률사 대웅전의 모습. 2022. 2. 1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사찰 입구에서 바라본 경주 동천동 백률사 대웅전의 모습. 2022. 2. 1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시 동천동 백률사의 범종에 목이 잘려 나간 승려 이차돈과 땅이 진동하고 하늘에 꽃비가 날리는 모습을 새겨 넣었다. 백률사는 이차돈의 순교지에 지은 사찰로 원래 '자추사(刺楸寺)'로 불리다 뜻이 같은 음인 '백률사(柏栗寺)'로 절 이름이 바뀌었다. 2022. 2. 1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시 동천동 백률사의 범종에 목이 잘려 나간 승려 이차돈과 땅이 진동하고 하늘에 꽃비가 날리는 모습을 새겨 넣었다. 백률사는 이차돈의 순교지에 지은 사찰로 원래 '자추사(刺楸寺)'로 불리다 뜻과 음이 같은 '백률사(柏栗寺)'로 절 이름이 바뀌었다. 2022. 2. 1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높이 약 1m 너비 29cm 크기의 육각기둥인 이차돈 순교비(석당 石幢)의 모습. 법흥왕때 22살의 승려 이차돈(박염촉)이 숨진 후 300년이 흘러 헌덕왕때 목이 잘린 이차돈의 모습과 글을 새겨 넣은 순교비를 백률사에 세우고 백률사 석당기(栢律寺石幢記) 혹은 이차돈 공양당(異次頓供養幢)라 불렀다고 한다. 한면에는 목이 잘려 나간 이차돈의 모습을 새기고 나머지 5면에는 바둑판 처럼 칸을 쳐서 글을 새겼는데 석각 마멸이 심해 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2. 2. 1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높이 약 1m 너비 29cm 크기의 육각기둥인 이차돈 순교비(석당 石幢)의 모습. 법흥왕때 22살의 승려 이차돈(박염촉)이 숨진 후 300년이 흘러 헌덕왕때 목이 잘린 이차돈의 모습과 글을 새겨 넣은 순교비를 백률사에 세우고 백률사 석당기(栢律寺石幢記) 혹은 이차돈 공양당(異次頓供養幢)라 불렀다고 한다. 한면에는 목이 잘려 나간 이차돈의 모습을 새기고 나머지 5면에는 바둑판 처럼 칸을 쳐서 글을 새겼는데 석각 마멸이 심해 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22. 2. 1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동천동 소금강산 입구에 자리한 높이 약 3.5m의 커다란 바위 사면(四面)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의 모습.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에 나섰는데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큰돌이 나왔다 동서남북 4면에 모두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사진 아래는 사면석불의 동남서북 방향의 석불의 모습(왼쪽 부터). 동쪽은 약사여래상, 남쪽은 석가여래상, 서쪽은 아미타여래상(삼존불), 북쪽은 미륵불이 각각 새겨져 있다. 2022. 2. 1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동천동 소금강산 입구에 자리한 높이 약 3.5m의 커다란 바위 사면(四面)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石造四面佛像, 보물)의 모습.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에 나섰는데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큰돌이 나왔다 동서남북 4면에 모두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사진 아래는 사면석불의 동남서북 방향의 석불의 모습(왼쪽 부터). 동쪽은 약사여래상, 남쪽은 석가여래상, 서쪽은 아미타여래상(삼존불), 북쪽은 미륵불이 각각 새겨져 있다. 2022. 2. 1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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