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의 아들 효소왕은 낭도가 1천여명이 따르던 화랑 부례랑(夫禮郎)을 대표 화랑 국선(國仙)으로 삼았다.
부례랑은 자신을 따르던 많은 낭도 중 안상(安常)을 가장 아껴 수제자로 삼는다. 어느날 그는 낭도들을 거느리고 금란(金蘭, 강원도 통천)지역에 유랑을 떠났다가 급습한 말갈족에 붙잡혀 납치를 당하고 만다. 낭도들은 유목 민족 말갈의 거친 칼날에 혼비백산해 모두 도망갔는데 오직 안상만이 부례랑을 구하려 말갈땅을 향한다. 뒤늦게 나라도 부례랑을 구하려 신문왕이 물려준 신비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의 힘을 빌리려 한다.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았으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장마엔 비가 그쳐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만파식적은 신라가 애지중지 여기던 국보였다. 그러나 나라 보물을 보관하는 서라벌 월성(月城) 창고인 천존고(天尊庫) 위로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만파식적과 거문고가 없어졌다. 효소왕은 사라진 보물을 되찾기 위해 1년치 세금을 현상금으로 내걸었다. 아들을 잃고 애타는 부례랑의 부모는 관음도량(觀音道場) 백률사(柏栗寺)를 찾았다. 관음보살상 앞에서 여러날 절을 하고 나니 향이 놓인 탁자 위에 만파식적과 거문고가 놓여 있었다. 이어서 말갈에 끌려간 부례랑과 안상도 불상 뒤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좌초지종을 들어 보니 적국에 붙잡힌 부례랑은 적국의 장군 집에서 목동으로 일하며 있었는데 한 스님이 찾아와 '고향 갈 생각이 없느냐'고 묻기에 그를 따라 나서 바닷가에 이르니 그곳에서 안상을 만났다. 스님은 만파식적을 둘로 쪼개 부례랑과 안상에게 주고 자신은 거문고을 타더니 어느새 고국땅 서라벌 북쪽 소금강산자락의 백률사로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은 이 스님을 관음보살의 현신(現身)으로 보았고 크게 기뻐한 효소왕은 관음대비상이 있는 백률사에 큰 시주를 내리고 백성들은 3년간 세금을 면제하고 죄인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또 안상과 안상의 아버지에게도 큰 벼슬을 내렸다. 또 왕은 신령스런 피리 만파식적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불렀다.
장창호 작가는 신라 삼소관음처 중 중생사에 이어 두번째 사찰 백률사의 관음보살 전설을 소리 연기로 펼치고 있다. 소리 연기 : 장창호 극작가, 정리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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