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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한준석 
 
 

자료 이미지. 아이클릭아트
자료 이미지. 아이클릭아트

내 뒷모습을 그려보기 위해
거울이 필요하다
 
긴 거울은
얇은 목덜미에서 꺼내오고
손거울은
잠버릇에서 가져온다
속삭임이 닿는 간격은
모두 슬퍼진다
 
나란히 두면
그 사이에서 나를 나눠 가지는 반복들
겨울, 당신의 그네를 밀어주다
손가락이 얼었다
손가락을
물감에 흐릿하게 녹인다
당신의 뒷모습을 그리다 붓을 떨어뜨린다
수채화는 멍이 들기 쉽다
 
두 개의 거울 사이로 곁눈질이 쌓여간다
그곳에 새를 띄우면 영원히 난다
공중을 그리기 위해서 점 하나를 찍는다
당신은, 웃고 있었나
나는 내가 모르는 어제를 물에 불리는 사람이다
내 뒷모습을 그려보고 싶어
얼굴을 물에 오랫동안 담가놓는다
 
현관문에 젖은 발자국이 와 있다
 
나의 표정에 물감이 샌다
공중을 그리고 있다
따뜻하고 아팠다
 
△한준석 : 1990년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2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한 때 수채화의 매력에 푹 빠졌던 때가 있었다. 물과 색의 농도와 결합에서 오는 놀라운 색조의 변화는 사람들의 기분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려웠다. 미적대다가는 물기가 말라서 비싼 화선지는 뻣뻣하게 뒤틀려갔다. 이럴 때 수채화는 살아있는 생물이었다. 한 여름 초록 잎들의 포개짐에 따라 명도와 채도를 발견한 것도 그때다. 수채화는 유화나 아크릴과는 달라서 매우 섬세하여 나름 산술적 토대위에서 붓질을 해야 하며 실수를 만회하기란 어느 경지쯤이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번짐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물의 농도와 마르는 속도의 섬세함을 자유자재 다룰 수 있을 때 창의적인 붓놀림이 가능하다고나 할까. 수채화는 맑고 투명하며 담백하고 경쾌하여 유화처럼 물감을 덧칠하거나 나이프로 긁어내고 시작해도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런 스피드와 퍼펙트에 홀렸으나 열정이 따라주지 못했다. 

 수채화를 읽으면 이상의 거울이 떠오른다. 이상은 거울 속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관찰하고 진찰한다. 그리고 이상(관념)과 김해경(삶)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지 앞뒤에 놓고 뒤를 비춰보는 것인지 아니면 생물학적인 뿌리까지 확대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겨울로 상징되는 어떤 시기에 '당신'이 등장하는 것은 분열된 자아라기보다 나르시스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거울 속에서 보다 더 내밀한 개인사가 들춰져야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으나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문맥의 이해보다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정서가 중요하다. 

 그림자는 앞모습 뒷모습이 같다. 그런데 화자는 왜 뒷모습을 그려보고 싶다고 할까. '보고 싶다'가 아니라 그려보고 싶다는 것은 현실의 자아와 이상적 자아를 분석하려는 것일까. 긴 거울은 아마도 생물학적인 것에 대한 관찰이며 습관이나 버릇 등 화자의 개성은 작은 거울 속에서일 것이다. 다만 "두 개의 거울 사이로 곁눈질이 쌓여간다/ 얼굴을 물에 오랫동안 담가놓는다"에서 유추할 뿐이다. 수채화는 맑고 투명하다. 온전한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 어제의 모습을 찾아 물에 불려 확대하고 무슨 변화나 단서를 찾으려는 것인지. 아무튼 감정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슬픔이 밀려든다. 존재를 마주하는 서늘한 자의식의 성장통을 들여다본다는 느낌으로.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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