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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앞
 
정소슬
 
접시꽃 모가지가 장대처럼 길었던 그 집 앞
담 아래 봉숭아도 까치발 치세우던 그 집 앞
봉창에 얹힌 코고무신이 지지리 눈부시던 그 집 앞
 
꽃들 다 시들고
등 굽은 낙엽 봉창에 뒹굴고
그 위 눈 내려 하릴없이 쌓이고
…… 다시 또 봄, 노란 병아리 줄을 서서
쫑쫑쫑 사립문 넘나들었어도           
한 번도 안마당을 밟아보지 못한 채
 
그 집

담 밑만 쓸고 다녔네
 
△ 정소슬: 2004년 계간 '주변인과 詩 '로 작품 활동 시작.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 민족문학연구회 등에서 활동. 시집 '사타구니가 가렵다' '걸레' '내 속에 너를 가두고'.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시 제목과 같은 가곡 '그 집 앞'  노래가 생각난다.'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로 시작하는, 어쩜 시인의 발걸음은 뒤에 오는 가사처럼 '오히려 눈에 뛸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그랬지 않았을까? 끝내 말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아주 오래전 일이 되었을 시인의 짝사랑이 조금은 아쉽고 싱거운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 순수한 마음이 손수건 한 장 크기만큼 젊음의 순간이 차지하고 있음이 아닐까? 차마 끄집어내어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었던 명치끝을 아프게 했을 짝사랑이었지만 시인의 추억은 아주 오래 묵힌 감정의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번쯤은 안에서 끄집어내어 노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가지가 장대처럼' 애태움의 시작은 접시꽃 붉은 빛 만큼이나 간절하였을 것인데 시인은 그렇게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다가서기 위해 돌아서오기도 했을 것이고 다음 날도 같은 행동이 반복 되었을 그 시간들을 '까치발'로 '코고무신' 보는 것으로 채워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의 사랑은 책의 첫 페이지를 열 때처럼 연락의 기다림은 아니었을까? 희망이 그리움 되고 그리움은 반복되는 행동으로 옮겨 다시 혼자만의 사랑을 이어가는, 그러나 늘 대상을 만나고픈 '그 집 앞'은 계절을 바꿔가며 시인의 발을 머물게 했을 것이다. 봄볕 아래 올망졸망 돌아다니는 병아리도 그리 쉽게 너머 갈 수 있는 '사립문' 앞에 좌절했을 시인의 애끓는 심정을 훤히 보게 되어 시의 내적인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 집 / 앞' 행을 나누어 간절함이 배가 되어 마지막 부분이 뭉클하게 멎게 하는 것 시인이 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시인의 사랑이 오래 기억 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 주고 있음이다. 어쩜 그래서 더 아픈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게 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마저도 감내하며 '담 밑만 쓸고 다녔네'로 가슴 한 쪽을 먹먹하게 하는 여운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특별한 사랑이 아니었다 해도 본인들에겐 더 의미 있고 더 간절하기 마련이다. 논리적일 수 없는 감정의 깊이는 당사자 외엔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독립적인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벚나무에서 팡팡팡 터지듯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사랑이어라.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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