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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역 7. ⓒ송화영
호계역 7. ⓒ송화영

 

호계역 8. ⓒ송화영
호계역 8. ⓒ송화영
호계역 9. ⓒ송화영
호계역 9. ⓒ송화영
호계역 10. ⓒ송화영
호계역 10. ⓒ송화영

  매일 무엇을 찍고 싶어 하는가,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나에게 무엇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가를 생각한다. 생각의 끝에 다다를수록, 나에게 의미 있는 해답은, 결정적인 순간이나 격정적인 스토리가 있는 사진이 아님을 알겠다. 당연한 결과로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를 넘어, 보이는 것들 너머에 있는 인간 사고의 기저에 있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를 위해서는 내 앞에 익숙하게 서 있는 장면들, 매일 보는 순간들, 반복되는 일상들 속에서 괴리 또는 중첩되어 있는 수많은 감정들, 그릴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행간을 떠도는 감정들, 나와 우리들의 깊숙한 곳에 잠겨 있는 것들을 찍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울산광역시 북구 호계동은 특별할 것 없는 울산의 가장자리에 있는 동네이다. 지방의 여느 변두리 마을이 그러하듯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살아온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오래된 건물과 흔적이 있다. 얼마 전 부터 나를 조급하게 만든 개발의 물결이 밀려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변화의 물결에 100여년을 지키던 호계의 중심, 호계역은 역사(歷史)속의 역사(驛舍)로 그 기능을 다했다. 그 누구도 늙지 않고 변할 것 같지 않던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은 갑자기 늙어간다. 이런 변화는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만히 보고 만 있지는 못하게 한다. 작업 초반의 의도는 이곳을 기록으로 남겨 흩어지는 기억을 박제하고, 부재할 것들에 대해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오래된 동네의 거친 색과 빛, 촉감은 작업에 당위성을 부여했고, 작은 카메라를 쥐고 거리로 나서게 했다. 그러나 막상 카메라를 들고 나섰을 때, 이 동네는 처음의 의도와는 다른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20년을 넘게 지나다니던 오래되고 익숙한 길과 골목, 스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익숙한 듯 낯설었다. 언제부터 내가 이곳에 스며들고, 이곳이 나에게 스며들었는지는 알지 못할 만큼 익숙한데 낯설었다. 익숙한 거리는 필름 안에서 낯설어지고, 사람들은 멀리 있었다. 나는 당황했고, 이곳에서 느끼는 익숙함과 낯섦, 따뜻함과 서늘함, 지각하는 것과 감각하는 것, 나와 그들,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송화영<br>ann0194@hanmail.net<br>개인전 5회, 그룹 및 단체전<br>22회울산아트포럼 회원<br>울산여성사진가회 회원<br>​​​​​​​고은포토1826 회원
송화영
ann0194@hanmail.net
개인전 5회, 그룹 및 단체전 22회
울산아트포럼 회원
울산여성사진가회 회원
고은포토1826 회원

작업은 크게 4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동네에서 내일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는 건물과 집들을 촬영했다. 그 건물과 집들을 정적이고 중성적 이미지로 담아내, 나와 피사체 사이의 시공간의 간극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섹션과 대비되는 인물 사진을 촬영했다. 이는 30~40년 가까운 세월 호계동을 한 자리에서 지켜온 그들의 깊은 애정과 삶을 촬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물들은 정형화된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옅은 미소나 얼굴 근육의 움직임으로 생동감을 지니고 있어 첫 번째 섹션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세 번째 섹션은 호계역이 가지는 지역적 의의를 부각시키는 정면 사진이며, 곧 부재하게 될 것에 대한 증명사진이다. 네 번째는 세 번째 섹션과 대비되는 스트레이트 사진으로 정면은 사라지고 많은 것들이 감추어졌다. 감추었으나 감추어지지 않는 느낌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오늘의 역사를 찍었으나, 사진은 한결같이 오늘의 장면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피사체의 역사만큼, 인물이 살아온 세월만큼의 시공간이 사진과 찍는 이, 보는 이와의 사이에 존재한다. 이것이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곧 잊혀져 과거가 될 것이고, 각자의 기억 속에서 각기 다르게 사라져 갈 것이다. 작업은 오늘의 기록으로서의 가치와 함께 나와 사람들, 과거와 현재, 공간과 시간, 지각과 감각을 매개하는 도구이자, 표현이다. 그 사이를 부유하는 인간으로서의 나의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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