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검정 고무신 신고 빨간 내복 입고' 김경구 동시집을 읽어 보겠습니다.
둘이 함께라면
(맷돌)
콩이든 팥이든
뭐든지 내 입에
한 숟갈, 한 국자 넣어 봐.
스륵스륵 돌리면
오물오물
가루가 되어 나와.
내 몸은 위짝 아래짝
단짝처럼 꼭 둘이 있어야 해.
고민거리 있다고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단짝 친구에게 털어놓아 봐.
함께한다면
단단한 고민 덩어리도
솔
솔
솔
부서질 거야.
콩국수 만들어 먹자며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맷돌을 돌리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콩국수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런 시간입니다.
아주 투박한 생김새라 세련된 맛은 아니었지만 깊은 속정이 담긴 그 맛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맷돌을 이용해 콩국수를 만드는 동안 온 가족이 함께였기 때문입니다.
"함께한다면 단단한 고민 덩어리도 솔솔 부서질 거야" 시인의 말처럼 가난했지만 한 끼를 위해서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맷돌을 돌리던 그 시간만큼은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콩국수를 맞이할 기다림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었습니다. 맷돌을 읽고 나니 새삼 그때 그 풍경이 아주 그리워집니다.
밤에 피는 맨드라미
(빨간 내복)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우리 집
큰언니는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 가방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첫 월급 타서 편지와 함께
우리 가족 식구 수대로 내복을 보냈습니다.
밤마다
빨간 내복을 입은 엄마와 두 동생과 나
한여름 빨갛게 고개 내민
맨드라미 같았습니다.
잠 안 자고 왔다 갔다 정신없는 막냇동생은
꼭 먹이 찾아 왔다 갔다 달랑달랑하는
닭 벼슬 같지요.
큰언니가 보내 준 내복으로
따뜻하게 지낸 겨울
마음속은 큰 언니의 빈자리가 허전해
눈물이 찔끔 납니다.
시인은 빨간 내복을 맨드라미라고 표현을 하고 있어 더욱더 빨간 내복에 정감이 갑니다.
빨간 내복이 우리 집에 피는 맨드라미였다는 걸 알고는 그 시절로 돌아가 저도 다시 한번 맨드라미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할머니까지 포함 맨드라미 여덟 송이는 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미소 지어봅니다. '검정 고무신 신고 빨간 내복 입고' 동시집을 읽으면서 '지금'도 먼 후일에는 '옛날'이 되겠지요. 라는 시인의 말을 의미 있게 되새겨봅니다. 무엇보다 지금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겠습니다. 박해경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