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무왕이 호국 사찰로 짓기 시작해서 그의 아들 신문왕이 완성하고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지은 감은사(感恩寺)! 그 절은 전쟁으로 없어지고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이 감은사 절터에 동과 서로 나뉘어 우뚝 서있는 두 개의 삼층석탑!
삼층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으로 알려진 국보이지만 얼핏 보면 화려한 볼거리가 별로 없어 그냥 스쳐가기 쉽다. 그러나 두 탑을 보수할 때 발견된 문화재의 가치를 안다면 이 탑이 달리 보인다. 바로 부처의 사리를 담기 위해 만든 『감은사지 사리장엄구』다.
특히 동탑에서 발견된 사리함은 ‘0.3mm의 예술’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름 1.2cm의 수정사리병 뚜껑과 길이 6mm의 종 모양의 풍탁에 크기 0.3mm의 둥근 금알갱이를 땜질로 정교하게 붙여 만든 장식이 그것이다. 육안으로는 구별하기 힘들고 100배 현미경이라야 제대로 볼 수 있고, 현대의 기술로도 원형대로 재현하기 힘들다고 하니 신라의 첨단 기술과 신라 장인의 탁월한 능력이 어느 정도의 경지였는지 놀라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금속 공예의 최고의 걸작, 금자탑’이라는 평가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서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동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니 두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면 눈여겨보면 좋겠다.
경주에 가면 화려한 구경거리를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꼭 시간을 내어 동해 바다에 있는 문무대왕릉을 찾아보고,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들러보았으면 한다. 답사 전에 신라의 역사를 한번 훑어보고 가면 여행은 더욱 재미있어 지고, 많은 인파로 복잡한 유명 관광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음이 허전하고 사는 게 심드렁해질 때도 긴 세월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두 석탑을 둘러 보면 마음의 평온을 얻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변에 별다른 건축물도 없고 잘 가꿔진 정원도 없는 텅빈 절터에서 나라를 굳건히 지키지 위해 애썼던 문무왕의 거친 숨소리, 백성을 사랑했던 그의 따뜻한 시선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위안을 얻고 움츠려졌던 어깨가 펴지지 않을까.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애정으로 보면 언제 보아도 좋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모습도 아름답고, 석양에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보아도 멋있다. 어둑해져 조명등이 비칠 때 보면 낮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앞쪽 들판에 벼가 노랗게 익어갈 때 멀리서 올려다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