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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수필가
정영숙 수필가

살다 보면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칠 때가 있다. 식물에 거름을 많이 주어 말라 버린 때도 있고, 끼워 파는 상품을 잘못 골라 낭패를 보기도 하고, 쓸데없는 대용량을 사서 다 쓰지 못해 버리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일을 경험하면서 적정 수준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업료를 과하게 치르는 상황을 맞으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계륵鷄肋이 되어버린 서산 간척지 땅이 내게는 바로 그런 경우다.
 서산 간척지 개발 이야기가 한동안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물의 빠른 유속과 심한 조수간만의 차로 물막이 공사가 난관에 빠졌다고 했다. 이에 개발을 맡았던 재벌 총수가 배를 가라앉히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해체해서 고철로 쓰려고 사두었던 스웨덴 폐유조선 워터베이호를 물막이로 가라앉혀 공사를 완공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기사를 접한 국민은 감동했고, 간척지는 마치 신화의 땅이 된 것만 같았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자 대단위 간척지였던 땅을 분양한다는 광고가 신문에 게재되었다. 서해안 개발시대가 눈앞에 와 있으니 이런 호재는 다시없을 것이라고 했다. 간척지 논을 300평 이상 필요한 만큼 살 수 있다고 하니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가을 농사가 끝나면 해마다 햅쌀을 보내준다고 하니 그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개발되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지 싶었다.

 쌀을 준다거나 논의 주인이 된다는 게 가슴에 와 닿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어렸을 때 논이 없는 집에서 자랐다. 쌀이 귀하다 보니 늘 보리밥을 먹어야 했으며 중학교 때는 친구들에게 꽁보리밥을 보이기 싫어 점심을 거르는 날도 많았다. 보리밥이라도 감사해야 할 판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도시락을 꺼내는 게 부끄러워 허기를 자초했다. 가을에 나락을 추수하는 이웃이 부러웠다. 쌀은 내게 부유함의 상징이었고, 논이 있는 집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 땅에서 농사지은 쌀을 보내준다거나 재산을 늘릴 수도 있다는 말은 땅을 사야 할 명분으로 충분했다. 망설임 없이 퇴직금을 중도정산해서 간척지 땅을 매입했다. 내 이름으로 된 논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았다. 그해 가을, 햅쌀이 배달되었을 때는 형제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며 이게 우리 땅에서 지은 것이라고 자랑했다. 내가 직접 농사지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논에서 쌀을 수확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빛을 잃었다. 농지법이 바뀌어서 위탁영농해야 한다고 농지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농지은행이 땅 주인들에게 위탁받은 논을 농부들에게 임대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땅을 맡기고 받는 임대료는 속된 말로 한자리 술값도 안 되는 돈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그 지역이 개발되어 땅값이 치솟을 것이라던 말도 허수였다. 인근에 있는 땅 일부는 개발된 곳도 있지만, 우리 땅은 아직도 그대로이고 땅값도 매입 당시의 금액에서 제자리걸음이다. 거리가 멀어 직접 농사지을 수도 없어서 땅을 처분하려 해도 임자를 찾을 수 없다.

 투자에 문외한도 땅을 사 놓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게 화근이었다. 그 땅이 절대농지라 개발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우매함이 탄식으로 남았다. 저축 이외의 다른 투자를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 투자처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필 지혜나 지식도 부족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그럴듯한 말로 유혹하는 사람들의 농간에 말려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핑계를 댄다고 해도 엉터리 과장 광고에 솔깃해 앞뒤 분간 없이 넘어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자식들만은 남들 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단단한 주춧돌을 놓아주고 싶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을 것 같다. 월급만으로는 재산을 늘리기 어려우니 땅 투기를 해서라도 부富에 한발 다가서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땅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성공담도 내 마음을 흔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한 방식은 투자가 아닌 투기라 비난한다 해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마다 눈높이가 다르니 더러는 나의 그 우매함을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변명해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매달 받는 유리 지갑만이 내 몫이라 여겼던 삶의 방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푼 두 푼 모아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내 집으로 옮겨 다니며 살림을 일군 시간이 알짜배기였지 싶다. 직장생활만 하던 사람이, 재테크에는 젬병인 사람이 감히 부동산으로 투자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별 이득도 없이 농지를 보유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눈먼 욕심으로 채워진 어리석음만 탓할 뿐이다.
 산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는 옛말이 있다. 쌀도 받고 돈도 벌겠다는 눈먼 욕심이 불러온 화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기에는 가슴이 시리지만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몇백 리 밖의 우리 논에서 영글어가는 나락을 생각하는 것으로 위안 삼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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