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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행복 

류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대문 박차듯 열어둔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의외로 절실하다
생각건대 그것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임이
자명하다
부탁이지만 재난지원금처럼 정부가 나서서
그것을 좀 나눠주면
고맙겠다
 
그것에 관한 한
나는 용빼는 재주가 없다
나이 들며 빠르게 쪼그라들고
그럴수록 애인들은 보챈다
그들의 행복지수를 생각
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진다
집을 팔았고
나는 맥주를 산다
그러나 시는 팔리지 않고
가난한 애인이 닦달한다
나는 애인들에게 팁을 줄 수 없으니
 
거친 그들을
한시바삐 해산시켜야 하리
대단히 고약한 결정이었으나 육탄
결사대 명단을 들고 나타난 사령관처럼
나는 대문 앞에 선다
이런 일이 벌어져 몹시 유감이지만
그것을 형성하기 위해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류흔(柳昕)시인: 1964년 안동 출생.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으로 2011년 시집 '꽃의 배후' 발간. 수주문학상우수상 수상. 2집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꽝 /대문 박차듯 열어둔다'
 호기 넘치고 박력 있는 서두를 읽으며 머릿속에서 굉음이 울렸다.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나는 꽁꽁 싸매고 묶어 놓지 않았나 하고. 그것을 왜 고통이라고 읽지 않았을까 궁금하기도 하여, 대문을 박차듯 나를 열어두는 연습이 필요하게 생겼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친해지는 것도 어렵지만 모르는 것들과 친해지는 게 훨씬 어려우니 말이다.
 
 한 권의 시집 분량으로는 50~80편 정도가 보통이다. 그런데 322편의 시가 실린 시집이 522쪽이라고 한다. 일반 시집 네다섯 권 분량의 상식을 뛰어넘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출판사의 서평에는 속도감 있게 읽히며 언어의 재기발랄함에 무릎을 치며, 촌철살인의 풍자에 혀를 차며, 언어유희의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고 했다. 두꺼운 시집이 단숨에 읽히는 이유라고 한다. 첫 시집을 내고 십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면서 첫 시집 제목인 '꽃의 배후'에 숨어 살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비와 바람과 번개와 불과 물과 고요와 극대의 경건과 분노 애달픔 슬픔으로 고뇌를 이루는 삶이 어떤 사람에게는 지대한 풍경이 된다. 이 풍경 속에 행복이라는 감각이 껴 있어야 무늬의 직조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행복으로 꽉 차 있는 그것은 권태와 절망이 아니겠는가. 슬프고 아프고 삐긋거리는 여러 풍경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 아름다운 무늬가 만들어지고 내 무늬를 찾는 작업이 바로 삶이 된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했던 말이 있다. 생은 단지 게임 한 판이 아니라 일련의 게임이라고 말이다.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게임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이런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시인은 그것을 촉촉하게 누리고 있는 듯하다. 삶에 유머가 있으니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아직도 천편의 애인을 거느리고 있는 시인의 너스레도 부럽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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