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수향 시인
심수향 시인

싱그러운 오월이다. 금아 피천득 선생님의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이 구절이 절절이 들어맞는 계절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효도의 달' '감사의 달'이란 이름을 누군가 슬며시 얹어놓았다.
 무거워지는 감사의 달. 속으로만 품었던 감사의 마음을 살며시 꺼내보기도 하고 조심스레 마음을 건네 보기도 하는 달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모처럼 꺼낸 마음이 움츠러들게 하는 감사에 대한 빚이 내게는 여럿 있다.

 학교졸업 후 고향으로 내려와 20년 가까이 교직에 몸을 담았다. 더 솔직히 직고하자면 철부지가 조금 더한 철부지를 가르친 셈이다. 그 인연도 소중하다 여기고 50여년을 함께 늙어가며 선생 대접해주는 제자들이 곁에 있어 든든하고 고맙고, 부끄럽고 미안하다.
 내가 교단에 섰을 그때엔 교육관이랄까 교육지침이랄까 모든 것이 과도기에 있었다. 특히 우리 집안에서는 교육은 엄해야 하고, 어른들 앞에서는 아이들은 예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익혔다. 그 버릇이 남아 그런지 학생들에게 칭찬보다는 야단을, 부드러운 언사보다는 매를 택했다. 그것이 옳다고 여겼기에 자극적인 말이 상처가 될 줄을 알면서도 실행했고, 언젠가는 나의 진심을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한 대 매보다 더 교육적이라는 말을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외면했다.

 어느 핸가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 따님을 가르쳤다. 나는 이 아이를 최고 학생으로 키워야 스승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 생각하고, 시간 날 때마다 불러 다그쳤다. 아이가 받을 상처는 교육의 과정이니 감수해야 할 몫이라 생각했고, 자극적인 말은 좋은 약이 된다고 생각하며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진심 전달은 불발되었고 후회로 얼룩진 결과만 남았을 뿐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제자들이 교생 실습 나온 것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최고의 교사가 되게 도와줘야 한다는 그놈의 의무감에 또 사로잡혀서 교과 담당 선생님들께 부탁을 따로 하고 다녔다. 칭찬보다는 작은 단점까지 따끔하게 지적해 주십사 부탁을 드린 일은 두고두고 후회스런 일 중 하나다. 그러느니 오히려 등을 두드리며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격려를 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가슴 답답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잘못은 제자 L과의 관계다. 교직 생활 20년 가까이 되었을 때 무단히 나는 학교에 사표를 냈다. 그리곤 얼마 후 생업을 위해 빵집을 열었다. 장사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이 뛰어들었을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인력문제였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나서 나를 도와준 사람이 제자 L이었다. L은 우등생이었고 매사 모범을 보이던 학생이었다.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왜 내게 왔을까 이런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했더라면......아마 L은 나의 작은 도움을 은혜라고 생각하고 그걸 갚으려고 찾아왔던 것 같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 속뜻을 짐작도 못 했으니 얼마나 우매한 선생이었던가. 류시화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지금 안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정말 아름다운 사제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갈등의 시작은 L과 내가 일하는 시간이 엇갈리면서 한 직원이 전해주는 근황을 듣고 별 생각 없이 응수한 것이 화근이었다. 말이란 전달자가 말하는 이의 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왜곡해서 전달했을 때 일은 걷잡을 수 없게 되질 않던가. 왜곡된 사실이 오가고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배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직원들을 믿었다는 뜻도 되지만, 역으로 그만큼 조심성이 없고 지혜롭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감정의 골은 깊어져 갔고, 급기야 L은 일을 그만 두고 내게서 떠나갔다. 얼마 되지 않아 또 한 직원이 떠나면서 그간의 경위를 귀띔해 주었다. 그제야 캄캄하던 눈이 열렸고 현명하지 못했던 나의 처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이후 최소한의 용서라도 빌고 싶어 L의 거처를 수소문해보았으나 서울로 간다더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20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져 간다. 몇 년 전부터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알아보았으나 아는 이가 없었다. 되돌릴 수 없는 어리석었던 행로는 반성과 후회로 점철되어 간다. 점점 더 무거워질 이 빚 어떻게 갚아야 할지…… 오월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