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떼 울린 효심에 송아지대신 돌아온 금 삼십냥
산적떼 울린 효심에 송아지대신 돌아온 금 삼십냥
  • 진희영
  • 2022.05.19 17:13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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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전설따라] 6. 심종태 바위
천황산과 재약산의 높은 봉우리가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드넓게 형성된 사자평. 사자평에서 동쪽 절벽아래 심종태 바위가 자부하고 있다.
천황산과 재약산의 높은 봉우리가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드넓게 형성된 사자평. 사자평에서 동쪽 절벽아래 심종태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배내)에는 심종태 바위로 불리는 큰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는 천황산(사자봉) 과 재약산 (수미봉)의 높은 봉우리가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된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소위 '하늘 널마루' 사자평이라 불리는 평원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펼쳐지다가 갑자기 급강(急降)하는 동쪽 사면 절벽으로 주암계곡과 인접하는 곳이다. 바위는 높이가 30여m, 둘레가 20여m나 되며, 오래된 소나무와 잡목들이 바위 주변에 자생하고 있어 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바위 아래에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10여 명이 족히 숨어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심종태 바위라 부른다. 

옛날 상북면 배내(이천마을)에는 효성이 지극한 심종태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근면, 성실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이 자자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40여리 멀리 있는 길을 부모님을 따라 언양 오일장을 따라다니곤 했는가 하면 집안일도 도맡아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장날이면 산나물이며, 더덕, 도라지, 버섯 등을 채취하여 언양장에 내다 팔았다. 푼푼이 돈을 모으면 부모님 제삿날에 제수 음식으로 쓸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껏 모은 돈으로는 다가오는 제삿날에 좋은 송아지를 사서 기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고심한 끝에 비리묵은(비루먹다의 방언 : 피부가 헐고 털이 빠지는 병에 걸리다)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기르기로 했다. 당시 비리 묵은 송아지는 키운다 해도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어서 가격은 일반 송아지의 절반이 안되었지만, 시장에서는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종태는 부모님을 돌보듯 지극정성으로 송아지를 돌보았다. 정성이 통했는지 송아지는 살이 오르고 건강해져 중송아지 정도로 자랐다. 심종태는 송아지가 자라는 모습에 기뻐하며 송아지에게 줄 풀을 베러 갈 때나 밭에 일하러 갈 때도 늘 데리고 다녀다. 또한, 틈만 나면 송아지가 좋아하는 풀을 찾아 사자평 근처를 다니며 맛있는 풀을 먹였다. 

심종태 바위는 높이가 30여m, 둘레가 20여m정도 되며 바위 아래에는 10여 명이 족히 숨어 지낼 수 있는 동굴이 있다.
심종태 바위는 높이가 30여m, 둘레가 20여m정도 되며 바위 아래에는 10여 명이 족히 숨어 지낼 수 있는 동굴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나 보니 외양간에 있어야 할 송아지가 안보였다. 깜짝 놀란 그는 집 근처 송아지가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심종태는 평소 송아지를 데리고 풀을 베러 간 곳과 밭일을 하러 갈 때 송아지를 데리고 간 곳 등등 여기저기를 찾아보았지만, 송아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행여 밤에 호랑이가 내려와서 소를 물고 갔을까? 아니면 밤에 도둑이 들어 송아지를 몰고 갔을까?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호랑이가 물고 갔으면 어디 뼈라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허겁지겁 이 골짝 저 골짝 다니다 보니 어느덧 해는 서산에 기울고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날도 어두워지고 하니 가까이 있는 바위 근처에서 이슬도 피하고 눈을 조금 부친 뒤 아침 일찍 일어나 사자평 근처를 찾아보기로 했다. 사자평은 평소 심종태가 틈만 나면 송아지를 몰고 송아지가 잘 먹는 풀을 찾아갔던 곳으로 그곳에 송아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심종태가 바위 가까이 가보니 바위 아래에는 조그마한 동굴이 하나 보였다. 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방이 어두운 탓으로 무섭기도 해 입구 바위에 기댄 채 잠시 눈을 붙였다.

심종태의 전설을 뒷받침하듯 사자평에는 1980년대 까지만해도 목장을 운영했다.
심종태의 전설을 뒷받침하듯 사자평에는 1980년대 까지만해도 목장을 운영했다.

심종태가 눈을 붙이려고 하는 순간 어디에서 말발굽 소리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10여 명이 훨씬 넘어 보이는 산적의 무리가 횃불을 든 채 심종태의 눈앞에 나타났다. 깜짝 놀란 심종태는 벌벌 떨며 어찌할 줄 몰랐다. 그들 중 왼쪽 눈을 가린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심종태 목에다 칼을 겨누며, "야! 이놈 너는 누군데 우리의 소굴에서 침입하여 잠을 자고 있느냐?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리는 이곳 천황산을 기점으로 밀양, 양산, 삼량진, 부산지역을 주름잡고 다니는 왈패(曰牌)들이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그 시절 험준한 산 고갯길에는 산적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나그네들과 보부상들을 약탈하는가 하면 민가를 급습하여 약탈과 아녀자 겁간을 일삼았다. 심지어 신혼 행차가 멋모르고 고개를 넘다가 새 신부가 산적에 끌려가는 봉변을 당기도 하였다. 그래서 보부상들은 긴 등재를 넘을 때 고개 아래에서 며칠씩 묵으며 사람들이 이 삼십 명쯤 모이면 고갯마루를 넘기도 하였다. 

심종태는 간이 콩알보다 작아졌지만 정신을 차리고 또박또박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저는 요 아래 마을에 사는 가난한 농부이옵니다. 부모님의 제삿날에 쓰려고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길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송아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하루종일 찾아다니다가 해도 저물고 배도 고프고 해서 이곳에 머물게 되었구먼요. 제발 목숨만을 살려주십시오"라며 코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싹싹 빌었다. 

산적들은 "그 송아지는 우리가 잡아먹었다"며 조롱하듯 웃으며 말했다.

신동대는 겁에 질려 목숨만을 살려 달라고 코가 땅에 닿도록 빌었던 사실도 잊어버린 채 산적들의 말에 부모님 제삿날 걱정에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산적들은 "아무리 우리가 남의 물건을 훔치고 약탈한다고 하지만, 너 같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의 송아지를 잡아먹고 그냥 있을 수는 없지. 이 돈이면 송아지 두 마리는 넉넉히 살 수 있을 거야"라며, 금 삼십 냥을 심종태에게 던져주고는 말을 타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심종태는 이 돈으로 좋은 송아지 두 마리를 사서 한 마리는 잡아서 부모님의 제사에 쓰고 한 마리는 잘 길러서 나중에는 수십 마리로 늘어나 부자가 되었고 이웃에 있는 예쁜 신부를 맞아 아들, 딸 낳고 잘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심종태의 효성에 산적들도 감동했으리라 믿으며 이 바위를 가리켜 심종태 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필자가 사자평 일대를 답사했을 당시에도 소를 키운 목장의 축사 흔적을 여러 군데 발견할 수 있었으며, 현재 샘물 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정지홍 사장도 1980년대엔 가게 바로 아래 너른 터에서 목장을 운영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울주군 상북면 배내(이천)에 사는 배내 대통령으로 불렀던 고(故) 이성수 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이다.

진희영 산악인
진희영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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