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지원 수필가
이지원 수필가

늦봄, 두 번의 콘서트를 가게 되었다. 비록 공연장 안에서는 마스크를 벗지 못했으나 많은 사람 속에서 함께 박수치며 공연을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햇수로 삼 년만이었다. 무대 위의 가수도 객석의 관객도 감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하찮은 미생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누렸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절절하게 일깨워주었다. 기연미연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잠시 왔다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준비 없이 맞이한 격리된 일상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우왕좌왕 몸도 마음도 헛갈렸다. 온 국민이 방역 당국과 합심하여 잠잠해지나 싶으면 어디선가 빌런이 나타나 일파만파 퍼트리길 몇 차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정해진 날짜에 약국 앞에서 줄을 섰고, 명절이 되었지만 떨어져 사는 가족간에도 왕래를 하지 못했다.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격리된 일상이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견뎌 나갔고 시간 속에서 적응이 되었으며 나름 갇힌 일상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그동안 누렸던 많은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누렸던 것이 모두 소중했고 꼭 필요했던 것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시간이기도 했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집안을 청소하고 요리에 열중했으며 화초에 눈길 주는 시간이 늘어났다. 종일 문밖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 참았지만 정 견디기 힘들 때는 마스크 단단히 쓰고 길 건너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미세먼지 사라진 더없이 맑은 봄날, 꽃은 흐드러지고 봄바람은 살랑댔지만 텅 빈 공원은 썰렁하기만 했다. 사람이 들어야 운영이 되는 영화관은 물론이거니와 전시관이나 공연장, 야구장 등도 텅 빈 봄을 견디고 있었다. 사람을 담지 못하는 실내 공간은 봉인된 진공관 같았다. 

 사회 전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 기막힌 현실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과연 끝나기는 할 것인가? 코로나19 감염병이 시작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포스트 코로나는 오지 않았다. 지금도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사이 전 국민의 70% 이상이 백신을 세 번씩 맞았으나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확진자가 하루 몇십만 명씩 나왔다. 가까운 사람들의 확진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더니 급기야 우리 가족도 확진이 되고 말았다.  
 온 국민이 된통 겪고 나자 급격하게 치솟던 확산세가 수그러들었다.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의 걱정이 없지 않았으나 조심스럽게 일상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소상공인과 무대 위에 서는 예술인, 프리랜서 등 사람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코로나 속에서 맞이한 세 번째 봄날,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듯 반가운 초대권이 날아왔다. 우리 시대의 가수 최성수, 정수라, 이치현 밴드가 출연하는 공연이었다.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줄을 서서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가! 무대에 선 가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무대를 마련해준 주최 측에 감사했다. 가수가 설 무대가 없으니 아무 할 일이 없더라고 했다. 관객을 위해 노래하는 일 말고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 했다.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왔을 무대 위의 가수들을 보며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졌다. 다시 무대를 찾은 그들에게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치며 응원을 보냈다. 한 공간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또 하나의 공연은 가수 이미자 선생의 '노래 인생 60주년 기념 콘서트'였다. 솔직히 예전에는 이미자의 노래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살다 보니 생각이 바뀌고 정서도 바뀌었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다 들어 있는 이미자의 노래를 들으며 나의 어느 시절이 소환되어 예상치 못한 추억에 젖어 들었다.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도 보였다.

 해방되기 몇 해 전에 태어나 해방을 맞이했으며 한국전쟁에서부터 월남전 최초 위문 공연 등 코로나19 감염 병까지 겪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두루 관통하며 살고 있는 이미자 선생이었다.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녹아 있는 이야기는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했다. 문예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열렬하게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팔십 노구임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국보급 가수 이미자 선생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던 꽉 찬 봄날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밀려있던, 미뤄 두었던 각종 행사와 모임이 봇물 터지듯 터져 사람들의 일상이 또다시 바빠졌다. 텅 비어 있던 야구장이 꽉 차고 영화관, 공연장도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제 또 보이지 않는 '그 하찮은 것'에 인류가 무너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우리 모두 똑같이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 않았던가. 작은 미생물과 사투를 벌이면서 새로운 삶의 태도와 방향,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