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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으로 떨어진 머리카락이/박밤 글·그림
방바닥으로 떨어진 머리카락이/박밤 글·그림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진다. 가느다랗고 힘이 없는 머리카락은 바람을 타고 방바닥에 떨어진다. 손가락으로 집어 휴지통에 넣는다. 요즘 더 횟수가 잦다. 그림책 '방바닥으로 떨어진 머리카락이'에서 루시도 나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루시에게서 떨어진 머리카락은 안절부절이다.

루시와 함께 하기 위해 온몸을 비틀며 자신을 어필한다. 루시가 좋아하는 꽃 옆에 있고 싶고 언젠가 책갈피가 되어 일기장에 같이 있었던 것도 그리워한다. 드디어 이토록 애쓰는 머리카락을 루시가 발견하고는 웃는다. 하지만 안심하는 순간, 루시가 머리카락을 창밖으로 던져 버린다.
 루시만 바라보던 머리카락은 점점 루시와 멀어져 간다.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며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며 알게 된다. 모든 것들은 때가 되면 떠난다는 사실을…

 "나도 때가 되어 떠난 거였어. 꽃병 속 꽃들도 결국 꽃밭에서 온 거니까."
 머리카락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연줄이나 전깃줄, 케이블 선 까지 유심히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각각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만큼이나 자신도 소중한 의미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떨어진 머리카락으로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박 밤 작가의 세밀함이 돋보이는 그림책, '방바닥으로 떨어진 머리카락이'는 그래서 읽을수록 마음을 울린다. 꼭 작은 세계에서 넓은 세계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떨어져 나가야 하는 날들이 꽃길이 아닐지 모른다며... 그러니 뭐든 다 괜찮은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 하다. 누군가에게는 '위로'라고 읽고 또 누군가에게는 '내려놓음'이라고 읽으며 어떤 이에게는 '홀로서기'라 읽을 수 있어도 좋은 책이다.

 때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나, 자신 때문에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 많았고 그들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고, 또 살아갈 것이다. 각자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의미 있는 삶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수진 아동문학가
이수진 아동문학가

떨어진 머리카락을 집는다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이 이어진
머리카락 깔린 길을 따라간다
한 움큼을 쥐어서 쓰레기통에 넣는데
어제 주운 것들이 시커멓게 똬리를 틀고 있다
듬성듬성 빠지는 머리통
자꾸만 비어가는 빈칸들
떨어지고도 또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이유는
이불을 들치면 알게 된다
슬그머니 드러나는 가늘고 긴 끈
고단한 내 몸 여기저기 닿았다가 무너지며
함께 엉키고 설켰을 그 밤
나를 놓지 않았다는 것을
헝클어진 날도 견딜만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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