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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훈 수필가
오병훈 수필가

내일은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이다. 6월 21일에서 22일 무렵이면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지구 위에 가장 높이 떠 있게 된다. 상대적으로 남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짧아서 겨울이 된다. 하지가 되면 지표면이 점점 뜨거워져 삼복 무렵이면 연중 가장 무더운 시기가 된다.

 원대의 수시력(授時曆)에 따르면 하지 기간을 5일 단위로 나누어 '초후에는 사슴의 뿔이 빠지고, 중후가 되면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가 되면 반하(半夏)의 뿌리가 굵어진다'고 했다. 반하는 3장의 소엽이 맞붙어 한 장의 잎을 이루는 약초이다. 독초이지만 꿩이 땅속의 동그란 괴경을 쪼아 먹는 것으로 보아 맹독은 아닌 것 같다. 1년의 반인 하지 때 약재를 수확한다고 하여 반하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생육조건을 가진 식물로는 꿀풀도 있다. 이 풀은 5~6월에 꽃이 피고 하지 무렵이면 식물체가 시들기 때문에 생약명을 하고초(夏枯草)라 한다.

 나무도 하지를 전후하여 두 번째로 성장한다. 봄에 싹을 틔운 느티나무 가지는 6월 초면 성장을 멈추고 잎이 두꺼워진다. 하지가 지나 장마기에 다시 가지 끝에서 새싹이 자란다. 이 때 돋아난 부드러운 잎을 먹는 곤충이 두 번째 알을 낳고 애벌레가 깨어난다. 그리고 새들도 두 번째 알을 낳고 새끼가 깨어나면 애벌레를 먹여 키운다. 하지는 이처럼 생태계에 큰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는 식물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1년 중 하지를 분기점으로 봄에 꽃이 피는 식물을 장일성식물이라 하고 하지 이후 가을에 꽃피는 식물을 단일성식물이라 한다. 장일성식물은 해가 점점 길어지는 때 꽃눈이 분화한다. 그에 비해 단일성 식물은 해가 짧아지는 때 꽃눈이 생기고 열매를 맺어 자손을 퍼뜨릴 준비를 한다.
 가을에 씨를 뿌리는 2년초인 유채나 배추, 양배추 같은 채소는 봄이 되면 줄기가 자라고 꽃이 핀다. 또 이른 봄에 심는 감자도 여름이면 생육을 마감하기 때문에 지상부가 시든다. 이때 땅속의 덩이줄기를 거둔 것이 감자다. 이처럼 하지 이전에 꽃과 열매가 달리는 식물은 생육기간이 짧은 것이 특징이다.

하고초
삽화 '하고초'. ⓒ왕생이

 가정에서 가꾸는 수선화, 히야신스 같은 것들은 꽃이 진 뒤에 잎도 곧 시든다. 생육을 마감했기 때문에 휴면에 들어가고 이듬해 봄 가장 일찍 다시 꽃이 핀다. 하지 무렵이면 앵두가 익고 매실과 살구, 버찌 같은 여름과일이 익으며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어간다.
 가을에 꽃이 피는 식물은 키가 큰 편이다. 국화의 경우 봄부터 가꾸면 허리까지 이른다. 키가 너무 크면 관리가 어렵고 재배 기간도 길게 된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국화를 꺾꽂이 할 때 장마가 끝난 후에 줄기를 잘라 심으면 키를 낮출 수 있다. 봄에 심은 키 큰 줄기나 하지가 지나 여름에 꺾꽂이를 한 난장이 국화도 가을 늦게 같은 시기에 꽃이 핀다. 늦게 심은 것은 낮은 줄기에서 꽃이 핀 관계로 앙증맞아서 화분에 가꾸기에 알맞다. 물론 코스모스 같은 꽃도 봄에 씨를 뿌리면 키가 너무 크고 줄기가 잘 쓰러지므로 키를 낮출 필요가 있다. 여름에 뿌린 싹에서도 꽃이 필 때는 같은 시기에 피므로 키를 낮출 수 있다.

 가을에 거둘 수 있는 작물을 하지 이후에 씨를 뿌리면 곤란한 것도 있다. 벼는 생육기간이 120일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봄에 모내기를 서둘러야 생육기간인 8월 중에 이삭이 올라온다. 아무리 늦어도 하지 이전에 모내기를 끝내야 수확이 가능하다. 늦게 심은 것은 그만큼 수확량이 줄어들고 채 익지 않은 볍씨가 된다.
 가을에 꽃이 피는 국화를 봄에 꽃이 피도록 할 수도 있다. 단일성식물의 꽃피기는 일조량과 관계가 있다. 국화 재배장 안에 불을 밝혀 낮을 연장해 주면 식물은 아직 여름인줄 알고 꽃눈을 만들지 않는다. 2월 졸업, 3월 입학 시즌에 맞춰 꽃 수요가 가장 많고 값이 좋은 때 출하하기 위해 이 시기에 꽃을 피워야 한다. 재배장의 조명시간을 점차 줄여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리면 식물체는 비로소 꽃눈을 키운다. 국화나 장미, 백합 같은 거의 모든 화훼류는 이렇게 하여 계절에 관계없이 꽃을 가꾸고 있다.
 우리가 늘 먹는 들깻잎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을에 흰 꽃이 피는 들깨가 꽃눈이 생기지 않도록 밤에도 재배장에 불을 밝힌다. 이렇게 하면 자라기만 할 뿐 가지가 갈라지지 않고 꽃눈이 생기지 않으므로 계속해서 깻잎을 딸 수 있다. 하지를 정점으로 하여 일조량이 식물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식물 재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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