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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련 동화작가
장세련 동화작가

나는 방정환, 마해송, 이원수, 권정생의 동화를 무척 좋아한다. 한국동화의 효시라는 의미에 앞서 암울한 시대에 맑은 동심을 지켜낸 데 대한 흠모의 마음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시대에 일찍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린 어른들. 그 마음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런 동화들 덕분에 어둠의 시대에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다. 세상은 어떤 고통이 따르더라도 살 만한 곳이라는 긍정의 마음도 갖게 되었다. 편안한 문체로 풀어낸 이야기들은 신산한 시대적 배경인데도 눅눅하지 않다. 난관을 헤쳐가는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활약상에서 축약된 동심을 읽어내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그럼에도 요즘 내가 즐겨 읽는 동화는 신간들이다. 그것도 가능하면 신예들의 작품을 애써 골라 읽는다. 농익은 문장의 편안함보다 톡톡 튀는 재미와 어설픈 듯 풋풋한 소재를 다루는 솜씨들에 놀라고 싶어서다. 이미 배운 것보다 새롭게 배울 것이 많은 것도 신예들의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나이가 들면 몸으로 숨길 수 없듯 문장도 나이를 먹는다는 걸 느낄 때마다 더욱 그렇다. 후배들보다 먼저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에, 자칫 후배들보다 낫다는 엄청난 오해로 무젖을 수도 있는 스스로를 향한 고운 매질이며,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차원이다. 

 '냄새 폭탄 뿜뿜'(박채현/한솔수북)도 그런 책 중의 한 권이다. 초등 저학년을 주독자층으로 만든 다섯 편의 단편들을 묶은 동화책이다. 제목만 들으면 왠지 퀴퀴한 냄새를 풍길 것 같지만 표지부터 밝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동심을 제대로 겨냥했다는 생각에 무릎을 탁 쳤다. 냄새란 말에서도 코를 싸쥐어야 할 것 같은데 폭탄을 뿜뿜 뿜어대는 건 뭘까? 아이들의 호기심이 꽂힐 테니까. 더구나 제목이 주는 선입견과 달리 동심의 향기를 마음에 스미게 하는 이야기들이라니.
 대파와 아이들에게 외면당하는 책, 길고양이, 배달맨 아빠, 바보 여우와 보리수나무가 주인공들이다. 
 매운 냄새로 자신을 지키는 대파에게서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깨닫는 은파, 아이들에게 외면당하는 책의 호소는 어른들에게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할 만한 이야기다. 이래야 한다, 이렇게 하라는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이래야 하는구나, 읽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는 '너라도 그럴 거야' 속의 길고양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병아리를 잡아먹은 고양이를 잡으려는 아이들이 고양이 잡기를 멈추게 되는 과정이 참 따뜻하고 자연스럽다. 뱃속의 아기들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게 된 승표. 사라진 병아리에게 속으로 사과하는 순수한 동심에 잔잔한 감동이 인다. 

 '남의 집 귀한 아빠'는 퀵서비스로 생계를 잇는 아빠를 둔 이준이가 주인공이다. 아빠의 직업이 창피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아빠를 이해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떳떳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므로. 
 "저를 살려주신 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분을 본 적 없지만 목소리는 들었지요. 아마 세상에서 제일 크고 멋질걸요."
 보리수나무로 자란 씨앗이 자신을 키워낸 바보 여우 '조'에게 하는 말이다. 뜨거운 햇살에 말라가던 작은 씨앗이 빨갛고 달콤한 보리수 열매를 조롱조롱 매단 튼실한 나무로 자란 것은 친구들이 바보라고 놀리던 조 덕분이다. 만나면 자신의 열매를 선물하고 싶은 나무의 마음이 가슴 한쪽을 충만한 감성으로 채운다. 은혜를 베푼 상대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 씨앗, 자신을 이렇듯 큰 나무가 되도록 보살펴 주었으니 분명 크고 멋질 거라는 믿음. 그것이 씨앗이 큰 나무가 되게 한 힘이다. 그 씨앗이 기다리는 대상이 자신이라는 걸 모르는 여우나, 그 여우가 자신을 돌봐 준 '제일 크고 멋진' 분이라는 걸 모르는 보리수나무. 그러면서도 한데 어우러져 서로를 겯는 결말이 읽는 이의 마음에 빛기둥을 세운다. 눈물겹도록 눈부신 신뢰와 희망은 불신의 시대를 위로하는 선물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누구에게도 크게 관심을 끌 만한 대상들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외면당하고 핍박받는 존재들이다. 그런 주인공들을 독자들이 관심을 갖도록 다독이는 작가의 글솜씨가 놀랍도록 신선하다. 보도블록을 뚫고 나온 풀꽃, 찌그러진 채 버려진 음료수 캔, 몽당연필, 공중전화 부스 등 작고 소외된 것들에 오래 마음이 가는 내 마음을 잡아끈 이유다. 
 잘 쓴 동화는 어린이들에게만 읽히는 것이 아니다. 어른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써낸 듯한 단편동화의 진수들 덕분에 마음이 온기로 그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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