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
무임승차
  • 임일태
  • 2022.06.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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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임일태 수필가
임일태 수필가
임일태 수필가

비 오는 날 초등학생인 손녀를 내 승용차로 등교시켰다. 매일 혼자 걸어서 다니는 학교지만 비 오는 날이라 귀여운 손녀가 고생할까 걱정이 돼서였다. "할아버지 차비는 나중에 커서 갚을게요"하며 손을 흔들고는 교문을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다. '차비를 받으려면 오래 살아야 할 텐데'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 것을….

육십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 비가 오는 날이 생각났다. 집에서 학교까지 십 리 길을 아무 불평 없이 걸어 다녔다. 그랬던 것은 더 멀고 더 험한 길을 걸어서 학교에 오는 친구도 많아서 불평은 사치였다. 비가 오면 삿갓을 쓰고 걷는다는 것이 귀찮아서 아예 학교에 가지 않거나 비를 맞는 것이 상책이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우리 집 쪽으로는 노선의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녀 돈만 있다면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우리 동네 친구들은 비 오는 날 수업이 끝나면 버스 정류장에 모여 차장(앞문의 안내양)이나 조수(뒷문의 남자 차장)에게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며 사정했다.

"차 좀 태워주이소 예" 배가 아파서, 감기에 걸려서, 다리를 다쳐서, 갖가지 이유를 붙여가며 차를 공짜로 태워달라고 차 앞문과 뒷문에 몰려가서 사정했다. 어쩌다 굉장히 운이 좋으면 공짜로 차를 태워주는 마음씨 고운 차장이나 조수를 만날 수가 있었지만, 대부분 "무임승차는 안 돼!"라는 말로 밀쳐버렸다. 그러면 또 한 시간을 기다려 차를 태워달라고 사정했다. 버스를 몇 대를 기다리다 비를 맞고 가는 친구가 생기고 사람 수가 줄어들면 차를 태워주는 경우가 가끔 생겼다. 공차를 타기 위해 서너 시간을 기다린 것이었다.

차를 타고 기분이 좋을 만하면 내려야 했다. 십 리 길을 차를 탄다는 것이 너무 신이 났다. 특히나 공짜로 차를 탄다는 것은 그 기분이 하늘을 찌를 것만 같았다. 그 시절 초등학교는 월사금이라고 매월 조금씩 내는 회비가 있었고 차를 한 번 타는 차비가 월사금보다 비쌌다.

어떤 때는 용기를 내어 차비를 몸으로 때우는 일도 가끔 했다. 차가 도착하면 말없이 차를 탔다. 내릴 곳에 도착해서 내리려면 차비를 내라는 차장에게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차비가 있었는데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 차장은 조수에게 "이 아이 손 좀 봐라"고 했다. 조수는 차에서 내려 주먹으로 '아구통'을 서너 대 갈겼다. 그리고는 앞으로 한 번 더 무임승차하면 죽여버리겠다고 고함을 치고는 떠났다.

볼이 얼얼했지만 그래도 공짜로 차를 탄 것이 얼마나 좋았던지. 또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 겨울에 추울 때도 그랬다. 어떤 때는 우리 동네 앞에서 내려 주지 않고 종점까지 가는 바람에 추운 밤중에 '책보따리'를 메고 걸어서 삼십 리를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 싶어 입가에 빙그레 웃음이 난다. 

요즘의 무임승차는 매우 심각하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심각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존폐마저 위협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이 무임승차의 문제로까지 확산된다. 

내 또래를 말초세대 또는 낀 세대라고 한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요 자식에게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처음의 세대, 마지막과 처음의 세대에 낀 세대라고 한단다. 예전에는 부모 젊었을 때 자식을 키우면 그 자식이 자라서 늙은 부모를 부양한다. 일종의 품앗이다. 그러나 그 품앗이가 없어졌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기는 하지만 자식에게 부양을 받지 못한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고 도리라고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다. 그 역할을 사회가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각자의 가정에 책임을 지우고, 노인을 부양하는 일은 사회가 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아이 하나를 낳아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삼사 억 원이 든다고 하는데 국가의 부담은 없다. 그래서 키운 자식이 낸 세금으로 사회의 모든 노인을 부양하는 제원으로 사용한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데 지출한 비용은 훗날 자식에게 부양받는 대가를 미리 낸 것이지만 이미 부도수표(不渡手票)다. 

요즘은 자식을 낳아 키우기 힘들다고,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고, 자식을 낳지 않거나 적게 낳는다. 부부가 두 명의 자식을 낳아야만 인류는 현상을 유지할 수가 있다.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유지할 수가 있다. 천정부지로 뛰는 아파트 가격도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폭락할 것이다. 소비가 줄면 생산도 줄어들고 생산이 줄면 따라서 실업자도 늘어날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모든 경제요소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대공황이 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 낳은 자식의 세금에 무임승차하겠다는 심리에 의해서 파생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앞날이 캄캄하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각종 출산장려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지금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무임승차는 도둑질이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도둑놈 잡아라!"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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