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정자방파제 축조에 훼손되고 일부만 남아
일제강점기 정자방파제 축조에 훼손되고 일부만 남아
  • 김동균 기자
  • 2022.06.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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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U+탐방] 울산과 나, 지역 문화재를 찾아서
3.북구 정자 유포석보와 사왜시발선처
동해를 드나들며 노략질을 했던 왜구를 막기 위해 조선 초기에 쌓은 유포석보.
동해를 드나들며 노략질을 했던 왜구를 막기 위해 조선 초기에 쌓은 유포석보.

# 조선조 왜구 방어를 위해 만든 유포석보
울산 북구 정자동 625( 북구 동해안로 1455-6 )에 위치한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돌로 쌓은 작은 성이다. 현재 750m 정도의 둘레만 보존되어 있고 가장 잘 남아 있는 동문의 성벽 최고 높이는 2.2m다. 조선 문종(1455년) 때 왜구를 막기 위해 목책성으로 지었으며 세조(5년 1459년) 때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지휘 아래 병사 300여명이 주둔하면서 수비를 했으며 일제수탈기 정자항 방파제 축조때 성의 큰 돌들을 뽑아 대부분 훼손됐다. 

 유포라는 이름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옛 문헌에서 따왔다. 울산에 3개의 항구 율포, 사포, 개운포 등 3개의 항구가 있었는데 개운포(開雲浦)의 지명은 지금도 명칭이 이어지고 있으며 사포(絲浦)는 현 중구 반구동 인근 바닷가, 율포(栗浦)는 북구 정자 일대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에 작성된 고적 용지 조서사에는 유포석보가 유포성지라는 이름으로 관리되고 있었다.(율포(栗浦)→유포(柳浦)→ 정자)  
 

신라 충신 박제상이 왜국에 붙잡혀 간 눌지왕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출항한 것으로 추정(비정)해 세운 사왜시발선처비.
신라 충신 박제상이 왜국에 붙잡혀 간 눌지왕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출항한 것으로 추정(비정)해 세운 사왜시발선처비.

# 박제상이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왜로 떠난 사왜시발선처
신라의 충신 박제상 공이 사신으로 왜에 갈 때 배를 처음 출발한 곳 이라는 뜻이다. 신라 충신 박제상이 포로로 잡혀간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사신으로 위장해 일본으로 출발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항구다.

 

유포석보 정상에 오르면 만나는 우물과 양철지붕.
유포석보 정상에 오르면 만나는 양철지붕 아래의 우물.

# 주차장에서 폐가 쪽 오솔길따라 올라야
때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쯤 북구 정자항을 찾았다. 유포석보(柳浦石堡)와 사왜시발선처(使倭始發船處)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강동 정자사거리에 접어 들어 왼쪽 산하동과 경주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도로로 접어 들자마자 만나는 도로 오른쪽 정자교회 건너 편에 목적지가 위치해 있었다. 


 유포석보 입구에는 승용차 8대를 수용할수 있는 주차장이 최근에 조성됐다고 한다. 그러나 입구에서는 석보의 흔적을 전혀 알수 없었다. 낮은 높이의 석성들이 산 숲에 가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향나무집'이란 간판을 내건 식당이 나왔다. 


 이 곳에서는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늦은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식당의 주메뉴가 토종닭, 토끼탕, 오리불고기, 오리백숙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에게 유포석보 입구를 물었다.  

동해를 향해 가지를 뻗은 팽나무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동해를 향해 가지를 뻗은 팽나무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주차장에서 북쪽으로 반 지하 형태의 낮으막한 폐가가 있는데 집 옆으로 사람 1명이 움직일수 있는 길이 나있다. 이 길이 유포석보로 가는 길이었다. 진입로로 들어 서면 낮은 땅에 지어진 폐가의 슬레이트 지붕이 발바닥 아래에 놓여 있었는데 절집으로 보였다.  


 석보입구에는 어린 죽순들이 어지럽게 자라고 있고 오르막길을 오르면 문화재 보호구역 경고문과 유포석보의 내력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정자 바다를 향해 가지를 뻗은 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제법 되어 보이는 팽나무였다. 팽나무 옆에 이끼가 낀 오래된 돌들이 2~3단으로 쌓인채 20여m 길이로 뻗어 있어 석보라는 느낌을 들게 했다. 

유포석보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푸른바다와 정자항.
유포석보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푸른바다와 정자항.

# 석보안쪽은 우물과 넓은 평지로 넉넉한 공간
이 곳에 들어서면 우선 반기는 것이 비석이었다. 신라 충신 박제상 공이 신라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배를 탔던 것으로 추정(비정)해 세운 비석인데  바로 '사왜시발선처' 비석이다. 

 다시 산속으로 길을 따라 오르면 나뭇가지에 빨간 보리수열매가 빼곡했다. 하나 따 먹어 보니 달콤했다. 인근에 가까운 곳에 밭이 있는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누군가 심은 것일 게다. 그 옆에는 민가도 있어 하얀 강아지 한마리가 요란스럽게 짖어대면서 낯선이의 방문을 경계했다.   

 이 길을 따라 낮게 조성된 석보가 보이고 묘지가 널려 있었다. 묘지에는 무릎 아래 높이로 자라는 띠가 하얀 수염을 햇빛에 반짝이며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언덕에 오르니 정자항의 유명한 귀신고래등대 2기와 방파제가 시원스레 눈에 들어 왔다.  

 언덕에서 다시 오르막길을 따라가니 숲길이 나왔다. 바람을 맞으며 시원스레 정상부 까지 오를 수 있었다. 정상부는 평산성 답게 널찍한 평지에 초목이 우거져 있었고 양철지붕이 있는 우물터가 인상적이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무거운 돌로 덮여져 있었다. 초목으로 뒤덮힌 평지는 왜적을 막기 위해 말을 타고 활을 쏘며 군사 훈련을 하기에 넉넉한 공간이었다. 
 * 주변 먹거리로는 정자 회센터, 대게횟집 등이 있다.   글&사진 김동균기자 justgo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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