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오르지 못한 이무기의 처절한 몸부림
하늘로 오르지 못한 이무기의 처절한 몸부림
  • 진희영
  • 2022.06.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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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전설따라] 7. 억산과 대비사
가운데가 둘로 나눠져 있는 억산.
가운데가 둘로 나눠져 있는 억산.

영남알프스의 서쪽 변방에 자리 잡은 억산은 기이하게도 산꼭대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도망치면서 꼬리로 산봉우리를 내리쳐서 두 개의 산봉우리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억산은 '수많은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라는 의미의 억만건곤(億萬乾坤)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수많은 산 가운데 명산'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또한, 억산은 운문지맥의 한 구간으로 주봉인 운문산에서 남서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억산을 찾아가려면 신라 때 창건한 청도 방면의 '대비사'를 거처 왼쪽 계곡을 따라 오를 수 있고, 밀양으로 넘어가다 산내면 석골사에서도 오를 수도 있다. 억산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무기가 긴 세월동안 꿈을 키워 왔던 대비지. 건너편 운무속에 억산의 모습이 보인다.
이무기가 긴 세월동안 꿈을 키워 왔던 대비지. 건너편 운무속에 억산의 모습이 보인다.

덩실덩실 춤추던 동자승, 이무기로 둔갑하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대비사에는 주지 스님과 상좌가 함께 기거하며 수도에 정진하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이 자다가 일어나보니 옆에 자는 상좌의 몸이 싸늘함을 느꼈다. 이튿날 역시 자다가 일어나보니 상좌가 어디를 갔다가 들어오는지라 스님이 어디에 다녀오느냐고 묻자 변소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하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데 몸이 역시 차가워 이상하게 여겼다. 

이튿날 스님이 자는 척하고 있으니 상좌가 살며시 일어나 스님 코에다 귀를 갖다 대고는 스님이 자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스님은 일부러 코를 골며 자는 척하였더니 상좌는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스님은 이를 이상하게 느껴 상좌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상좌는 억산 아래 있는 대비지(박곡지) 못으로 향했다. 못에 이르자 상좌는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못의 물이 쫙 갈라지고 상좌가 이무기로 변해서 못 안을 오가며 헤엄을 치자 그곳에 있던 물고기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하여 솟구치기도 하고 물가로 갈라지는 것이었다. 이런 행동을 몇 차례 거듭하더니 상좌는 다시 옷을 입고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억산 정상 표지석.
억산 정상 표지석.

주지 스님 꾸짖음에 놀라 천년서 하루 못 채우고 염원 못 이룬 상좌
상좌는 산 능선을 따라 오른 뒤 운문사 쪽으로 급경사진 곳(속칭:이무기 못안)에 이르자 춤을 덩실덩실 추기 시작했다. 온몸을 허공에 맡긴 채 빙빙 돌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사방 천지에 먼지가 일어나고 돌, 자갈들이 널브러진다. 나무들은 송두리째 뽑혀 날아들었다. 

상좌는 한 손으로 나무들을 모아 빗자루 모양을 만들더니, 다시 웃옷을 벗어 빙빙 돌리더니 커다란 빗자루로 돌을 하나하나 쓸어내리는 것이었다. 상좌가 비질하자 신기하게도 크고 작은 돌들이 가랑잎처럼 쓸려 내리는 것이었다. 

스님은 눈 앞에 펼쳐지는 기이한 광경에 놀라 큰 소리로 "네 이놈. 상좌야! 도대체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라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그러자 갑자기 "우르르 꽈꽝! 꽝!" 하는 천둥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시간에 하늘이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온 산을 뒤덮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태풍 같은 회오리바람이 들이닥치더니, 아름드리나무들이 통째로 뽑혀 허공에 돌기 시작하고, 집채만 한 바윗돌이 굴러떨어진다. "우지끈, 우지끈!"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꽝! 꽝! 꽈 광! 꽝!" 비는 거세졌고, 천둥번개는 쉬지 않고 내리쳤다. 

스님의 꾸짖음에 놀란 이무기는 슬픈 울음을 터뜨리며 날아돌며 하늘로 오르지 못했다. 

"아! 하루만 더 있으면 용(龍)이 되어 승천(昇天)하는 1,000년의 염원을 이룰 수 있었는데… 아! 원통하고 분하구나!" 

승천의 뜻을 이루지 못한 이무기가 도망쳐 들어간 호박소의 경관.
승천의 뜻을 이루지 못한 이무기가 도망쳐 들어간 호박소의 경관.

원통함에 바위를 내리쳐 자갈로 만들고 천지를 불태우다
천년에서 하루를 못 채워 용(龍)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몸부림은 너무나 처절하였다. 

대낮에 뇌성과 천둥이 천지를 진동하더니 사람의 머리통만 한 우박이 쏟아졌고, 이 일대의 농작물은 삽시간에 불길에 휘말려 모두 타버렸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몇 년간 가뭄과 때아닌 우박, 서리 등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무기가 절 뒷산의 정상 바위를 꼬리로 내려치자 산꼭대기는 가운데가 쩍 갈라져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깨진 바위로 부르기도 하는데, 승천의 뜻을 이루지 못한 이무기는 가지산을 넘어 호박소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억산의 명물인 깨어진 바위는 바로 이 이무기의 꼬리가 만들어낸 자국이며, 운문사 위 이무기 못안골에는 마치 빗자루로 쓸어 낸 것 같은 자국이 바위 면에 많은 것도 모두 그 때문이라고 한다. 

가뭄 오면 이무기 달아난 호박소에 기우제
이 같은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억산 주변에는 기왓장 크기만 한 수없이 많은 돌자갈이 깨어진 채 널브러져 있고, 높이가 70여m나 되는 바위의 위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호박소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억산 정상에 올라 그때의 그 광경을 상상해 보며 시 한 수를 적어본다.

억산(億山)
/진희영


이무기 한이 서린 억산

천년 소망 가슴 깊이 품은 채

밤마다 이무기로 둔갑하여

대비지 연못에서 용이 되길 소망하며

억산 상봉에서 외로움 달랬네.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그 뜻 이루려

기도에 몰두하고 정진을 거듭할 때

어디서 들려오는 스님의 인기척

아! 원하고 비통하다

천년의 소망(所望) 이루지 못하고

몸부림치던 흔적 곳곳에 가득하네. 


 

진희영 산악인
진희영 산악인

※이 이야기는 필자가 20여 년 전 운문산 상운암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이다.

※이무기는 한국 신화에서 토지신과 용(龍)의 중간 격인 환상의 동물로 천년을 물속에서 수행하여 여의주를 획득하면 용이 될 수 있는, 용이 되기 이전의 동물을 말한다. 전신에 비늘이 있고 머리와 양 귀가 자라나 머리의 크기는 큰 바구니만 하고, 몸은 뱀 같이 긴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대비사(大悲寺)는 1718년 '청도군 호거산 운문사적'에 의하면 진흥왕 18년(557년) 신승이 운문산에 들어가 3년 동안 수도한 뒤 도를 깨닫고 7년에 걸쳐 인근에 5개의 절을 지었다고 한다. 동쪽에는 '가슬갑사' 서쪽에는 '소작갑사' 남쪽에는 '천문갑사' 북쪽에는 '소보갑사' 가운데 '대작갑사' 를 지었다고 되어있다. 이 5개의 절을 오갑사로 불리었는데 고려 초에 대부분 폐사된 것으로 전한다. 이중 대작갑사가 오늘날의 운문사이며, 소작갑사가 지금의 대비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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