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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해변에서 만난 어느 어머니의 뒷모습
백령도 해변에서 만난 어느 어머니의 뒷모습

백령도의 해변에서 아침녘에 만난 어느 어머니의 뒷모습이다. 이 사진에 무슨 얘기를 더 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했다. 

백령도는 인근 바다에 NLL(북방한계선)이 그어져 있고 많은 해변에는 용치가 설치되어 있다. 용치(龍齒)란 적선의 상륙을 막으려고 설치한 용 이빨 모양의 날카로운 쇠말뚝이다. 이 사진에도 해무가 끼어 있고 용치가 우뚝 서있는 해변을 이 어머니는 걸어가고 있다. 모래 위로 아침햇살이 살짝 비치고 있다. 세월을 견디느라 허리가 굽어져 더욱 작아 보이는 키에 삶의 고단함과 그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른손엔 작은 몸을 지탱하는 나무 지팡이를 들고, 뒤로 돌린 왼손에는 대나무 광주리를 들고 있다. 허리에 걸쳐진 작은 배낭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창넓은 모자 안에 감춰진 얼굴은 어떨까? 짙은 주름에 웃는 모습이 아름다울 것 같다. 평생 삶의 터전이었을 갯벌에 조개 같은 해산물을 잡으러 나왔을까? 아니면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까? 집에 가면 함께 늙어가는 남편이, 아니면 개나 고양이가 반겨줄까?  

힘들더라도 해산물을 많이 잡아 갔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고, 나가 사는 자식 주려고 보관하는 기쁨의 재료가 되면 좋겠다. 조금씩 잡은 해산물을 팔아서 생계에 보태기도 하고, 손주들 오면 꼬깃꼬깃 꺼내주는 용돈이 될 수도 있겠다. 

또 생각해 본다. 이 어머니의 자식은 어떤 사람일까? 어머니에게 자주 전화하고 가끔씩 찾아는 올까? 제발 어머니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가슴에 못을 박는 폐륜아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걸 알지만 ‘제발 일 좀 그만 하고 몸을 아끼며 편히 쉬시라’는 당부를 하고, 평생을 쉬지 않고 일만 하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그러면서 아프다는 소리는 왜 하느냐’고 짜증이라도 내는 자식이면 그나마 괜찮겠다. 자식 부담주지 않으려고 아파도 참고 견디는 어머니를, 모른 체 하지 않고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 자식이면 좋겠다. 

효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느 종교나 그의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모두가 사랑이 기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을 내어주고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만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 찾아가고 그 앞에서 내 마음을 전하고 얘기를 충분히 들어 주는 것! 
명절에 자식 편하라고 제발 오지 말라고 말릴 텐데도 힘들게 민족대이동에 맞추어 찾아가는 것! 노인의 얘기를 듣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지만 편안한 얼굴로 마주앉아 이웃얘기, 속상한 일, 어리광부리듯 쏟아내는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 부모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부모의 자식 사랑이든 자식의부모에 대한 효도이든 가족 간의 온전한 사랑은 쉬운 일은 아니나 조금만 노력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어 얘기를 들어주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하고 싶은 말을 조금 아끼는 것,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챙기는 것…정답은 아닐지라도 이렇게라도 하면 관계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잘 하라’는 말은 효도를 강조하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다. 돌아 가시고 안계시면 자신이 부모에게 무심코 했던 무례한 행동 하나, 가시 돋친 말 한 하나가 두고두고 회한이 되곤 한다. 어머니는 강하지만 자식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고, 쉽게 상처 받는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많은 자식들이 자신도 나이를 먹고 자기 자식이 성장해갈 때 깨닫게 된다. 형편이 나아지면 효도하겠다는 다짐은 때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당장 전화로 안부 묻고, 바쁘더라도 찾아가 5분이라도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

‘자식을 잘 키우는 가장 확실한 길은 스스로 자기 부모에게 잘 하는 것’이라는 말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진리이다. 사진을 보며 다시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삶의 무게가 조금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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