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원의 '두 사람 이야기']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 - 차치리와 신발장수
[이서원의 '두 사람 이야기']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 - 차치리와 신발장수
  • 이서원
  • 2022.06.2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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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친구들끼리 만든 친목 모임에서 회장이 바뀌었다. 코로나로 인해 한 번도 모임을 하지 못 채 그의 임기는 끝이 났다. 조금은 서운한 면도 있겠지만, 한편 쉽게 임기를 마쳤다며 내심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다. 전임이 다시 2년 더 집행부를 유지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회칙에 따라 새롭게 회장단이 바뀌었다. 엔데믹(endemic)으로 가는 시기라 열정이 넘쳐 많은 계획을 세우고 의기롭게 출발을 했다.

 그런데 의외의 문제에서 조금씩 삐거덕거렸다. 여러 행사를 하면서 전임들이 자꾸 딴죽을 걸었다. '그걸 왜 하나. 저건 요즘 시대에 안 맞다.'며 계속 시비였다. 다들 양쪽의 눈치를 살피느라 계속 어정쩡 했다. 그동안 못 만났으니 1년에 두 번 모이던 것을 두 달에 한 번씩 보는 것도 좋다며 몇몇이 의견도 내었지만 합의를 보지 못했다. '내로남불'이라는 유행어처럼 내가 하면 다 좋고 남이 하면 다 싫은 이기적인 면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수십 년간 맺었던 모임이 순식간에 두 동강 나게 생겼지만 오래된 친구들이니 슬기롭게 극복하리라 믿는다.

 한비자의 '외저설 좌상'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정나라에 차치리(且置履)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일 수십 리 떨어진 시장으로 신발을 사러 갈 계획이었다. 밤에 먹과 종이를 꺼내어 자기 발 크기를 그대로 따라 그렸다. 발에 딱 맞게 본을 뜬 후 접어 머리맡에 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이 되자 길을 나섰다.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정오쯤 되어 시장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나온 번잡한 시장터에서 신발 가게를 찾아갔다. 거기에는 멋진 신발이 가득했다. 주인장을 불렀다. 그리고 어젯밤에 그려둔 자기 발 그림을 보여주려고 이리저리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옷을 뒤져도 찾지 못했다. 주인장은 이상하게 여겼다.

 "도대체 무얼 그리 찾으시오?" "어젯밤에 내 발 모양을 그려둔 본을 찾고 있소" "본이 지금 왜 필요하오. 지금 신을 신어보면 될 것을!" "예끼, 주인장! 어찌 내 발을 믿을 수 있소. 탁본을 가지러 다시 집에 갔다 오리다."  
 그가 집으로 다시 돌아가 본을 들고 시장에 왔을 때는 이미 날은 저물었고 시장은 문을 닫고 아무도 없었다. 차치리는 왜 자기 발을 믿지 못하고 어젯밤 그려둔 제 그림만 신뢰했을까. 우린 어쩌면 저 차치리의 어리석음을 탓하면서도 자신이 차치리인지는 잘 알지 못하며 산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지금 주어진 현실의 자신을 믿으라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과거의 관습과 풍습, 비현실적인 관념과 익숙한 환경만을 고집하지 말라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어제 그려둔 그림(과거)은 믿으면서도 지금 자신의 발(현재)을 믿지 못하는 우를 범하며 우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말이야 왕년에 좀 잘 나갔지' 흔히 우리가 쓰는 말이다. 그러나 과거에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던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예전에 잘 나갔다고 끝까지 잘 나가란 법은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낡은 옛 법도에 익숙해서 새로운 법을 적용하고 추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이 출근길에 언론과의 접촉을 가지면서 국민에게 더 다가온 듯해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소통은 늘 외치던 구호였던 터라 자신의 국정 철학을 내놓기에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본다. 그러나 가끔 언어적 발언의 수위를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기자가 어떤 질문을 하자 대뜸, "지난 정부 때도 그러지 않았나요?" 반문한다. 지난 정부가 그랬다고 나도 그리한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때도 그랬으니 나도 하겠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세계는 지금 정치 경제 문화 모든 것이 국경 없는 전쟁터로 하루하루가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처럼 변화하고 있다. 잘못하다간 나라가 휘청거리고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도전과 국민의 안위를 위해 정책을 개발하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나도 하는 거니 너희는 참견하지 말라는 말인가? 이런 무책임한 변명이 어디 있나. 과거의 좋은 정책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과감히 청산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리더의 소신 있는 모습이다.      

 차치리가 그려두었던 본에 집착해서 지금의 자기 발을 못 믿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난무하고 있다. 신발의 본이 없을지라도 새 창조와 가치 창출을 위해 내 발을 믿고 신을 사 신으면 된다. 그리고 열심히 걸어가고 뛰어가면 새로운 목표물에 도달하리라 믿는다. 동네의 작은 소모임이나 국가의 일들을 보며 습(習)을 버리기란 이래서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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