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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를 따라온 1만여 물고기들이 돌로 굳어 이루어진 어산불영 아래로 운해가 가득하다. 밀양시 제공
왕자를 따라온 1만여 물고기들이 돌로 굳어 이루어진 어산불영 아래로 운해가 가득하다. 밀양시 제공

풍경소리조차 잠든 유월 오후의 산자락에서 천 년 전 화석이 된 생명의 환생을 생각한다.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만어사를 찾아가는 길은 오만한 여름이 출렁거렸다. 
 신록은 절정의 색감으로 찬란했으나 도로는 쓰러지듯 낡은 질감으로 투덜거렸다.
 해발 674m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만어산, 그 흘러내린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만어사와 어산불영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렇게 더뎠다. 
 
어느 보름날 밤,
구름이 하늘과 산들의 틈을
메워 천지 구별 없는 
시간이 되면
어산불영 일만의 종석에는
기다렸다는 듯 지느러미가
돋고 비늘이 생겨나
먼바다로 나아가는 환생을
꿈꾸고 있을지도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나는 밀양의 3대 신비 중 하나인 종석.  세월의 흔적 위로 사람이 낸 길이 뚜렷하다.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나는 밀양의 3대 신비 중 하나인 종석. 세월의 흔적 위로 사람이 낸 길이 뚜렷하다. 밀양시 제공

# 두드리면 청아한 종소리가 나는  종석
만어사는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미륵전과 범종각이 전부인 작은 절집으로 통도사 말사다. 만어사는 김수로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랜 세월의 기록을 보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흔적은 물고기가 변해 돌이 되었다는 어산불영(경남도 기념물)과 고려 시대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보물)이 전부다. 
 만어사의 유래는 삼국유사 탑상(塔像)편 어산불영(魚山佛影)조에 자세하다. '고기(古記)에 이런 기록이 있다. 만어산은 옛날의 자성산, 또는 아야사산인데, 그 옆에 가라국(呵羅國)이 있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바닷가로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곧 수로왕이다. 이때 그 영토 안에 옥지(玉池)가 있었는데, 그 못 안에 독룡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에 다섯 나찰녀(羅刹女)가 있어 그 독룡과 서로 오가며 사귀었다. 그러므로 때때로 뇌우를 내려 4년 동안 오곡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왕은 주술로써 이 일을 금하려 해도 할 수 없으므로 부처를 청해 설법했더니 나찰녀가 오계(五戒)를 받았는데 그 후로는 재해가 없었다. 수로왕이 부처의 은덕에 감사해 만어사를 지었다.'
 후일 일연이 직접 와서 살펴보니 "분명히 공경하여 믿을 만한 두 가지가 있다면서 골짜기 바위 3분의 2는 모두 금과 옥의 소리를 내는 것과 멀리서 바라보면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보이지 않아 어떤 때는 보이고 어떤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 했다.

 돌을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 종석으로도 불리는 만어석 너덜겅과 더불어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는 사명대사비. 한여름에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이 밀양의 3대 신비로 불린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절집 마당으로 오르면 대웅전을 마주한다. 그 앞에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단아하게 서 있다. 오른쪽 미륵전 앞에 서면 겹겹의 산들이 어울려 만들어낸 봉우리들이 곱게 포개져 있다. 발밑엔 묵언수행의 수행자처럼 세월 앞에 검게 그을린 너덜겅이 수백여 미터 깔려있다. 

만어사는 창건 설화가 김수로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천년 고찰이다.
만어사는 창건 설화가 김수로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천년 고찰이다. 밀양시 제공

# 왕자가 변한 미륵바위와 물고기가 변한 종석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전해지는 이 돌들의 얘기에는 동해 용왕의 아들이 명이 다해  낙동강 건너 무척산의 신승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가다가 멈추는 것이 인연 터'라는 법문을 들었다. 떠나는 왕자를 일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따랐고 머물러 쉰 곳이 만어사였다. 

 왕자는 이곳에 이르러 미륵바위로 변했고 뒤따르던 물고기들은 돌로 변해 너덜겅을 이뤘다.
 일연이 말한 금과 옥의 소리를 내는 바위들은 크거나 작은 채로 뒤엉켰지만 모난 곳이 없다.
 실제 이 바위들 20개 중 1~2개는 종소리가 나는데 그 청아한 울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지만, 사람에 따라 종소리로, 목탁소리로 제각각 들리기도 한다. 
 세월의 먼지를 덮어쓴 제각각의 만어석들은 미륵바위로 변한 왕자의 환생을 기다리며 수 천년을 엎드려 있다. 흔들림 없는 굳건한 기원이다.

 구름이 하늘과 산들의 틈을 메우고 바다와 구별 없는 시간이 되면 어느 보름밤에 은비늘 반짝이며 살아 대양으로 환생해 나아가는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돌들은 지질학적으로 2억 년 이전 고생대 말에서 중생대 초의 퇴적암인 청석으로 알려져 있는데 학자들은 "해저에서 퇴적된 지층이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해침과 해퇴의 풍화작용과 빙하기를 몇 차례 거치는 동안 풍화가 가속되면서 암괴들이 벌판을 이루게 되었을 것"이라 추론하고 있다. 

겹겹이 중첩된 산봉우리들을 발아래 두고 선 삼층석탑.  천년고찰를 증명할 유일한 흔적으로 남았다.
겹겹이 중첩된 산봉우리들을 발아래 두고 선 삼층석탑. 천년고찰을 증명할 유일한 흔적으로 남았다. 밀양시 제공

# 간절히 기원하면 자식을 점지해 주는 영험함
전설에 나오는 미륵바위는 미륵전에 모셨는데, 5m 정도의 크기에 붉은빛이 돌아 범상치 않아 보인다. 그 크기로 인해 경상도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통층 구조의 법당을 지었다. 미륵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부처, 사천왕상 등 여러 모습으로 보인다.  
 이 신비한 미륵바위는 간절히 기원하면 자식을 점지해 줬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방 등 나라에 큰일이 생겼을 때 오른쪽 부분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미륵불이 중생을 구제하러 온다는 56억 7,000만년의 세월 앞에 중생들의 삶은 찰나와 같아서 가늠할 수도 없지만, 천년을 기다린 이 일만의 생명은 여전히 기다리며 환생을 꿈꾼다. 
 석양이 발갛다. 넓게 퍼진 구름 사이로 붉고 노란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어산불영에도, 미륵전에도 온통 물들인 여름 저녁의 빛깔은 종석의 소리까지 물들인다.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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