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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수필가
정영숙 수필가

폐지가 생기면 내다 놓지 않고 모아두는 남편이 답답했다. 왜 굳이 비좁은 다용도실에 따로 두느냐는 타박에 꼭 필요한 분에게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밖에 내놓으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갈 터인데 공연히 일을 만든다며 짜증을 내도 별 반응이 없었다. 어쩌다 폐지가 사라지고 나면 내 속이 다 후련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휴일 낮이었다. 등 굽은 할머니가 얼기설기 나일론 끈으로 짐칸을 만든 작은 손수레를 끌고 집 앞에 멈추었다. 쓰레기통 옆에 누군가 세워둔 빈 종이상자를 집어 수레에 담고는 걸음을 옮겼다. 힘들게 수레를 끄는 등 굽은 노인의 정수리 위로 한낮의 불볕이 작열하고 있었다. 작은 몸집, 햇볕에 검게 탄 얼굴이 몹시 지쳐 보였다. 낡은 수레와 씨름하다 금세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수레에 담긴 몇 장 되지 않는 폐지가 천근만근의 무게로 보였다. 


 급히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 한 병을 들고나오니 할머니는 옆집 쓰레기통 앞에서 빈 상자에 붙은 비닐 테이프를 떼어내고 있었다. 병뚜껑을 따서 드시라고 내밀자 머쓱해 하며 괜찮다고 사양했다. 날씨가 너무 덥다며 재차 권하니 마지못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음료수를 받아 마셨다. 엎드렸던 허리를 펴느라 한 손으로 등을 두드리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습이 마음을 아릿하게 했다. 이가 빠져 움푹 들어간 할머니의 볼우물이 둠벙처럼 느껴졌다.


 더위 먹을 수도 있으니 무더운 한낮에 다니지 말고 새벽이나 저물녘에 다니시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 지역 원룸에는 대부분 직장인이 살고 있어서 낮에는 폐지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내 말에 한참을 머뭇거리던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선선한 아침이나 저녁에는 손수레를 매단 오토바이가 골목을 훑으며 폐지를 싣고 가버려 빈 상자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나마 이렇게 더운 낮에는 간혹 빈 상자를 얻을 수도 있다며 웃었다. 뜨거운 한낮에 폐지를 수거하는 이유를 알고 나자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어설픈 말씀을 드린 게 부끄러웠다.


 "이 집 사장님도 빈 보루박스 꼭 내한테 준다 아인교. 얼매나 고마븐지."
 그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야 남편이 폐지를 따로 모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 마음이 거기서 거기라고 하던가. 아니면 부창부수夫唱婦隨였을까. 


 남편도 건장한 남자가 오토바이로 폐지를 모아 가고 난 뒤, 빈 수레를 끌고 오가는 할머니 모습이 안타까웠던 모양이었다. 종이상자를 모으지 말고 밖에 내다 놓으라고 핀잔했던 게 민망했다. 남편이 모아주는 폐지가 돈으로 계산하면 몇 푼 되지 않았겠지만, 할머니께는 위로가 되었으리라.


 폐지 한 장이라도 더 얻으려고, 경쟁자와 겹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무더운 한낮에 수레를 끌어야 하는 할머니. 그다지 큰 수입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상자를 모으는 일에도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상자를 옮기는 수단과 이동하는 능력에 따라 모으는 폐지의 양도 달라진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울컥함이 밀려왔다. 


 생계에 보탬이 되려면 누군가는 좀 더 나은 벌이 수단을 고민할 것이고, 그것은 각자의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토바이 수레를 끌고 폐지를 수거하는 사람이 약자의 먹이를 빼앗는 강자처럼 느껴졌다. 힘없는 할머니의 모습과 대비되어서였을 것이다. 


 "고맙심데이~ 새댁이요~ 복 마이 받으이소."
 더위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 그늘에서 조금만 더 쉬다 가시라고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폐지를 하나라도 더 모아야 한다며 수레를 끌고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땡볕 아래 손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폐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꾸릴 소중한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실감했다. 손자 녀석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사 먹이려면 폐지 줍는 일을 멈출 수 없다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귓전을 울렸다. 한낮의 활동을 삼가라는 뉴스가 나올 정도의 무더운 날씨에도 폐지를 모아야 하는 삶이 무거워 보였다. 혼자 걷기에도 벅찰 것 같은 몸으로 손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 위태위태했다. 더위도 잊은 채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멀어져 간 골목에 시선을 둔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 후로 남편과 나는 할머니께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있으면 따로 모아두었다가 수레에 실어드리고는 했다. 가끔은 따뜻한 커피나, 시원한 음료를 함께 마시기도 하고, 잠깐씩 말벗이 되어 드린 적도 있었다. 


 손자를 보살펴야 한다는 말씀 이외에는 당신 사생활에 대해서 입을 다무셨던 할머니. 
 그로부터 몇 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은 그 작고 낡은 수레를 볼 수 없다. 그때 할머니께 좀 더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던 게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손자 사랑이 당신 삶의 전부인 듯했던 할머니 모습이 가끔 눈에 선하다.


 치아가 빠져 발음이 부정확한 탓에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았지만 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그때의 연로하셨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은 이 세상의 소임을 마치고 영면에 드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택배 물품을 정리한 뒤 나온 빈 종이상자를 쓰레기통 옆에 정리해 놓으면서 듣는 이 없는 바람을 허공에다 전해 본다. 
 "할머니가 계시는 곳이 어디든 힘들지 않으시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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