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수공원에서

강세화

가슴이 터지거라 감동할 일 없어도
물안개 스며드는 숲에는 윤기가 서리고
속내를 열어 보이는 일도 의도대로 안 되는
미숙한 짐작이 마음을 뻗친다.
천천히 피어나는 생각이 감감해질 때까지
누구나 비슷한 이유든지 다 다른 이유든지
대체로 사람 사는 이치가 그러하더라고
아프게 돌아보는 일이 어디 한둘일까만
이윽고 숨돌리고 듣는 수면에 물빛이 깊다.

△강세화 시인: 1983년'월간문학' 1986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별똥별을 위하여' '행마법', 제3회 울산문학상 수상.

서금자 시인
서금자 시인

호수공원의 잔잔한 수면에서 또 다른 모순을 본다. 굴곡진 생의 페이지를 저장해 둔 것 같은.

 나는 선암호수공원길을 즐겨 걷는다. 언뜻 보면 어제와 오늘의 호수공원이 그대로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날마다 다르다. 물의 높이가 다르고 물의 결이 다르고 일광욕을 즐기는 자라 떼의 이웃이 다르고 오리들의 너를 향한 몸짓이 다르다. 이렇게 호수공원이 만들어 내는 오늘은 변화무상하다. 

 이 변화무상을 시인은 '가슴이 터지거라 감동할 일 없어도/물안개 스며드는 숲에는 윤기가 서리고/속내를 열어 보이는 일도 의도대로 안 되는/미숙한 짐작이 마음을 뻗친다.'라고 쓰고 있다. '미숙한 짐작', 겸손으로 다가오는 말이다. 독자들을 성찰의 눈으로 돌아보게 하는 언어다. 
 '열 길 물길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모른다고 자주 말씀해 주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살아오면서 미숙한 짐작으로 너와 나를 민망하게 했던 일 얼마였을까. 그러면서 나를 다잡고 반성하며 오늘에 이르지 않았던가. 하여 '호수공원에서'의 시는 불꽃이었던 젊은 시절을 되새기며 지나온 날들을 차분히 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오늘을 성숙시키고 있다.  

 그러다가 결구 부분에서 '아프게 돌아보는 일이 어디 한둘일까만/이윽고 숨돌리고 듣는 수면에 물빛이 깊다'로 쓰고 있어 이 행간에 또 우리를 한참 머무르게 한다. 그리고 숙명처럼 살아온 지난날의 희로애락이 깊은 물빛에 침잠되어 있는 걸 독자들에게 알아차림하게 한다. 

 이제 그 깊은 물에 물수제비를 던지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이 피어오르지 않을까. 시인은 만만치 않았던 지난날을 '물빛이 깊다'의 이 짧은 시구를 통해 묵언의 설법을 하고 있다.

 나, 오늘은 호수공원길을 걸으며 물빛이 깊은 수면에 참 어여쁜 내일을 수놓아 보리라. 미숙한 짐작도 '괜찮아!' 다독이며.   서금자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