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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훈 수필가
오병훈 수필가

몇 해 전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연길에서 용정을 거쳐 화룡시의 어느 시냇가에서 승합차의 엔진을 식히려고 잠시 멈췄다. 너른 시내는 조선족 청년들이 천렵을 나왔는지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부녀자들이 돌 위에 걸어 놓은 솥에 매운탕을 끓이느라 분주했다.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길가에서 자라는 배초향(방아풀)을 뜯어 넣는 것이 아닌가. 이들의 할아버지인 이주민 일세대가 경상도 산청에서 집단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유두절을 맞이하여 마을 청년 계원들이 피서를 왔다며 매운탕 맛보고 가라고 했다. 낯선 곳에서 동포를 만난 것도 반갑지만 같은 말을 하고 음식에 풍속까지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진한 피붙이 같은 정감을 느꼈다.

 우리 겨레는 어디에 있든 한족이라는 긍지를 잃지 않는다. 가난한 중국 동포까지도 고유문화를 지키고 있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매운탕을 맛 볼 수는 없었지만 유두절을 맞이하여 하루를 쉬면서 민족 고유의 명절을 즐기는 저들을 통해 동질감을 느꼈다.

 떡타령에는 '정월 보름 달떡이요 이월 한식 송편이라. 삼월 삼질 쑥떡에다 사월파일 느티떡이라. 오월 단오 수리취떡에 유월 유두 밀전병이요 칠월칠석 수단(水團)이라.' 이렇게 다달이 먹는 떡이 달랐다. 유월에는 밀가루 반죽을 번철에 지져 먹는 밀전병과 칠월에는 수단을 먹는다고 했다. 음력 유월 보름이면 더위를 피해 산간 계곡을 찾거나 시내로 나가 시원한 물에 몸을 식혔다. 이날만은 부녀자들도 폭포에 몸을 맡기는 일을 물맞이라 하여 산골짜기를 찾아가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면 안마 효과가 있어 신경통이 완화된다고 한다.

 이 날은 아침에 먹을 것을 준비하여 물가를 찾으면 저녁 해가 기울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천변에 솥을 걸어놓고 간단한 음식을 조리해 먹었다. 솥뚜껑에 지져 먹는 밀전병도 유두절에 먹어야 제맛이다. 또 멥쌀을 쪄 찧은 뒤 가래떡을 만들고 이것을 썰어 동그랗게 비벼 구슬 모양으로 빚어 놓는다. 오미자를 우려낸 분홍빛 물에 떡을 넣고 꿀을 넣은 뒤 얼음을 띄워 먹는다. 달고 새콤하며 오싹할 정도로 차디찬 음식이 바로 수단이다. 반대로 건단(乾團)은 꿀물에 띄우지 않고 그냥 조청에 찍어 먹는 떡이다. 사대부 댁에서는 분단(紛團)을 빚었다. 찹쌀을 익반죽하여 잣 콩으로 소를 넣고 둥글게 빚어 참깨나 흰 팥가루에 버무린 요리이다.

삽화. ⓒ왕생이

 오월 단오부터 복중까지 수시로 해 먹었던 갈잎떡도 있다. 주로 함경도 지방의 여름 음식인데 찰기장으로 밥을 지어 떡갈잎에 싼 후 볏짚을 태운 잿물에 다시 삶아내면 부드럽고 갈잎 향이 배어 맛이 향기롭다. 밥이나 떡을 갈잎에 싸서 쪄 먹는 음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불의에 저항하여 멱라강에 몸을 던졌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물고기가 시신을 먹지 말라고 대신 댓잎에 싼 찰밥을 던져 주게 되었다. 해마다 그의 기일인 오월 오일이면 삼각형 댓잎밥을 강에 던지는 풍습이 생겼다.

 유두절은 중국에는 없는 우리 고유의 명절이다. 언제부터 명절로 기념하게 되었을까. 고려 명종 때 김극기(金克己)의 '김거사집(金居士集)'에 따르면 '동도(慶州)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에 유월 보름이면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계원들이 모여 유두연을 벌인다'고 했다. 유두절은 신라 때부터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널리 퍼진 풍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두(流頭)란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준말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고 했다. 동쪽은 양기가 가득하며 기운이 충만한 곳이므로 동으로 흐르는 기운찬 폭포에 몸을 씻으면 액을 물리치고 건강을 유지한다고 믿었다. 조선 시대로 오면서 선비들은 함부로 의관을 벗을 수 없었으므로 그저 발을 담그는 정도의 탁족(濯足)으로 더위를 씻었다. 물론 평민들은 잠시나마 고단한 농사를 잊고 시원한 물가에서 하루를 즐겼다. 술과 음식을 차리고 마을 사람들이나 계를 함께하는 계원 또는 가족 단위로 물가를 찾기도 했다.

 음력 유월 보름이면 힘든 여름 농사도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지은 때이다. 밀이나 보리 추수도 끝났고 논매기도 마쳤으니 한 숨 돌리게 되었다. 그래서 유두날에는 당산목 아래 모여 호미씻이라는 잔치를 벌였다. 음식을 차려 농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몸과 마음을 맑은 물에 씻어내는 일을 결(潔)이라 했다. 이 말이 후에 계(契)로 발전하여 공동체 삶을 만들었다. 유두는 한해를 결산하는 일꾼들의 곗날인 셈이다. 모레는 음력 유월 보름 유두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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