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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너, 월세 산다는 말이 뭐야?"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A는 청력이 좋지 않아 목소리가 크다. 자신이 잘 안들리기 때문에 남들도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이 말에 모여 있던 여러 사람들이 둘을 번갈아 보며 불안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B는 평소 말끔한 복장에 멋진 차도 운전하고 다니면서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A와 B는 얼마전 부부 동반으로 만난 일이 있다. 그때 아내들끼리 나눈 대화에서 B의 아내가 자기네들은 요즘 남편 회사 사정이 안 좋아 월세로 어렵게 산다는 불평을 한 것이다. 이 얘기는 곧바로 A의 아내가 A에게 얘기하면서 노출이 된 것이다. A는 친구로서 걱정이 되어 물어 본 말이었다. B는 자신이 월세산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해도 남들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며 꼭 그렇게 큰 소리로 사람 들 앞에서 망신을 줬어야 하느냐며 싸움이 난 것이다. A는 A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오래전 A가 어렵게 빈민촌에 살던 시절, B가 집에 가는 길에 그가 산다는 동네 입구에 내려주더니 "뭐 이런데 사냐?"며 참 안됐다며 지나가는 말로 했던 것을 회상해서 맞 받아친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 어렸을 때부터 친구이니 화해하라고 종용해 봤지만, 이 일은 아직도 당사자들은 화해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다. 

"어이! 오랜만이구만, 아직도 그렇게 몸이 무거워 형님을 힘들게 한다며?"

아들 결혼식장에 손님으로 댄스동호회 회원들도 여러 명 왔었다. C라는 후배가 둘러 보니 내 파트너로 같이 댄스를 하던 D라는 여자를 보자 인사말이라고 던진 말이다. C는 원래 목소리가 크다. D는 이말을 듣자 여러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붉혔다고 들었다. 얼마 후 결혼식장에 왔던 사람들에게 보답 차 식사자리를 마련했는데 D라는 여자가 내게 따지듯 덤벼들었다. "왜 여기저기 다니며 자기 흉을 보느냐?"는 것이었다. 그녀가 몸이 무거워 같이 춤추는데 버겁다는 사실은 같이 있던 자리에서 내가 늘 하던 말이다. 체중을 실은 발에서 전진 또는 후진하는 발이 나가야 하는데 체중 이동을 그 반대로 하기 때문에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 레슨을 받아서라도 빨리 고치라고 했었다. 나이도 나보다 아래고 댄스 기량도 아무래도 차이가 나다 보니 부담없이 잘 되라고 한 말이었다. 이 일로 그녀와는 파트너 관계도 깨지고 영영 안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가 내게 "너는 잘 하냐?"라고 한 말이 치명타였다. 붙잡고 같이 댄스를 하니까 같은 수준으로 보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경기대회에 출전하는 파트너가 따로 있다. 동호회 사람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같이 어울렸다가는 같은 부류가 되기 때문에 안 보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많다. 전철 안이나 사무실 등 공공장소에서도 휴대폰 통화를 하는 소리가 너무 크다. 다른 사람들이 통화 내용을 억지로 들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음식점이나 당구장에서도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많다. 게임을 하면서도 떠들고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한번은 당구장에서 너무 시끄러워 주인에게 좀 조용히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단골손님들이라 싫은 소리를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시끄러운 격투기 중계 방송을 틀어 줬다. 그 당구장은 시끄러운 손님이 온다는 소문으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결국 문을 닫았다. 

음식점에서 시끄러운 손님이 있으면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그 정도는 보통이라며 내가 이해해 달라고 한다. 단골손님이니 이해해달고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아예 그 음식점에서 나와 다른 집으로 간다.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담소하는 소리가 담밖을 넘지 말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남이 의식하는 수준의 소리는 기초질서에 속한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장마당 수준이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목소리 관리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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