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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길 수필가 

깊숙한 마을에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열매를 한 번도 달지 않은 늙은 수나무이다. 외톨이지만 키와 몸피가 어찌나 우람한지 마을의 수호신 같다. 나무 주변을 걷는데 돌담 옆에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 은행나무 그늘이 지붕 한쪽에 얹혀 쓰다듬는 듯이 살랑댄다. 집도 위무가 있어 견디는가. 은행나무를 보러 와서 마음이 집에 잡힌다.
 
풀밭 사이 흙길로 걸어 집을 살핀다. 보이는 것 죄다 세월을 짊어졌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골 빠진 척추처럼 내려앉았고 서까래 하나를 잘못 건드리면 손쓸 사이 없이 주저앉을 것 같다. 남새밭 같은 마당 너머 남향으로 마루가 놓였다. 그마저도 추레함을 추스르는 듯 바랜 결 사이로 볕을 끌어들인다. 대문은 없으나 집의 측면에 쌓인 장작으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순간, 집을 받치듯 쌓인 장작더미에 온통 홀리고 만다. 
 
장작 단면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져 상형문자 같다. 그걸 해독하려 가까이에서 보다가 몇 발 뒤로 물러서기도 해 본다. 내 눈에는 동그라미, 물고기, 우렁이, 꽃 등으로 보인다. 못다 한 말이 켜켜이 쌓이면 가슴이 탄다거나 천불이 난다고 하던데 나무도 그런가. 사람도 누구나 저런 형상 하나씩 가슴에 새기며 살지 않을까. 아무렴 그게 삶일 테다. 생을 가진 것에 시련 없기를 바라면 모순이라 장작에 새겨진 그림이 생의 축적 같다. 
 
몇 번의 인기척에 미닫이문이 열린다. “누고?" 할머니 한 분이 아랫도리를 질질 끌어 내다본다. 어두운 시각에 왔다면 폐가에 머무는 혼령이라도 본 듯 혼비백산했을 거다. 그래도 혼자 사는 세월이 길었던 탓인지 마른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 있다. 
 
나는 선뜻 곁에 은행나무를 보러 왔다가 장작이 신기해 들어왔다고 한다. “별사람 다 보겄네" 하신다. 이내 파뿌리 같은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긁어 쪽진 뒤로 붙인다. 나는 앉으란 말이 있기도 전에 엉덩이를 마루에 걸친다. 그래도 얄궂은 객이 귀찮지는 않으신 것 같다. 습관처럼 마른 걸레를 손에 쥐고 바닥을 쓸어 툭 턴다. 그래봐야 부스러기가 그 자리에 도로 떨어진다. 그제야 내 궁금증을 알아차린 듯 이웃 사람이 해마다 고만큼씩 쌓아놓는다며 고마움을 내비친다. 겨울을 춥지 않게 넘기라는 따스한 정이 햇살과 함께 마루에 내려앉은 것 같다.
 
감나무 장작이다. 가을에 감을 따면서 가지치기하여 땔감용으로 잘라두었다. 불쏘시개로 쓰일 잔가지는 따로 묶어뒀다. 할머니가 아궁이까지 옮길 수 있게 소량으로 나누어져 보지 않은 손길에 정이 읽힌다. 나무의 키를 자른 줄기는 어른 허벅지 정도의 굵기이다. 그다지 굵지 않은 줄기에 새겨진 형상이 서로 다르다. 그림의 선이 가늘거나 굵으며, 색이 연하거나 진하다. 굵은 나무일수록 선이 두텁고 더 새카맣다.   
 
감이 많이 열리는 나무일수록 속이 검다는 걸 할머니는 어떻게 알았을까. 아흔넷 해를 사신 혜안인가. 나무에 문양이 마치 인두 열로 지져 그린 낙화(落火) 같다. 생의 시련도 종류와 크기가 다양하여 사람마다 새긴 형상이 다르지 싶다. 일곱 자식 중 다섯 남매를 먼저 보내고 아래로 둘만 남았다는 할머니는 천불을 몇 번이나 겪었을까. 어떻게 그런 시련을 감당했을지 상상이 안 되는데 낯선 사람인 나를 잡고 묻어둔 아픔을 소환한다.
 
할머니의 가슴에 이는 바람 소리가 입술 사이로 샌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더니 그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리려고 귀를 모은다. 더구나 셋째는 첫돌을 지내기도 전에 죽었단다. 부지깽이도 일꾼으로 써야 할 시절이라 뙤약볕도 마다치 않고 논일하다가 빈 젖이나마 물리러 집에 오니 축 늘어졌더란다. 더 맥이 빠진 것은 고만고만한 것들이 방에 있어도 몰랐단다. 배고파서 죽고, 병에 걸려도 약을 못 써서 죽고…. 남은 두 자식 중 막내아들은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여섯 째 딸 하나가 성하단다. 
 
이래저래 사연을 읊는 할머니는 눈물마저 메말랐는지 손등으로 눈두덩을 한번 쓸고 만다. 지난 세월이 야속한데 몸까지 성한 곳이 없는 할머니 속도 저 장작 같을 거다. 십중팔구 해독하기 어려운 문양이 새카맣게 탔을 테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듯이 감나무도 자식 같은 감을 지켜내느라 갖은 애를 다한다. 감나무 농사를 짓게 된 이후 그게 눈여겨 살펴진다. 모진 비바람에 열매를 지키다가 가지째 부러지는 경우를 보면 나무의 모성이 읽힌다. 부모는 자식 걱정이 인지상정이듯 나무도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야 결실을 본다. 하지만 이겨냈다 싶다가는 주황 물이 들면서 잃는 것도 많다. 그러기에 수확기까지 속이 타지 않고 어쩌랴. 자식은 그런 사랑이 있어 내 몸 키우며 어미는 그리 자식을 거두느라 수없이 가슴을 지진다. 
 
할머니 인생에 따스한 볕이 몇 번이나 들었을까. 초록 이파리 사이에 매단 노란 별이 감나무의 희망이듯이 할머니의 젊은 시절에는 자식 농사가 우주였을 거다. 진한 슬픔이 늦가을 오후의 문양으로 비친다. 
 
어느새 길어진 은행나무의 그늘이 지붕을 반이나 덮었다. 바람 너울에 실린 그림자가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 무늬마저 당신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며 다독여주는 것 같다. 저물어가는 빛을 품은 장작마저 한 줌 재가 될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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