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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일주일 내내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가 있다. '엄마야 누나야'라는 동요인데 일하며, 운전하며 계속해서 부르게 된다. 눈물이 나올 때도 있고, 배경이 저절로 그려지는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다. 난 삼형제로 누이도 누나도 없다. 앞집 친구는 매달 누나가 보내주는 '어깨동무' 만화책을 얼마나 자랑하던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누나가 있다면 친구들과 다퉈도 내 편을 들어줄 것만 같았고, 가끔 투정을 부려도 업어줄 것 같았다.

누나의 누비처네에 업혀 잠든 남동생, 그런 사진을 볼 때면 내가 그 등의 아이가 되어 새록새록 잠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누나는 엄마 같고 세상의 어떤 일에도 내 말에 더 귀 기울여 들어주는, 그야말로 피를 나눈 남매이기에 정이 더 깊은 것은 자명하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수많은 글 가운데 가장 애틋한 장면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섭정과 그 누나를 들겠다. 그는 위나라 지읍(車只邑)의 심정리 사람으로 일찍이 집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어머니 누나와 함께 제나라에 몸을 피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엄중자' 또한 자기의 원수인 '협루'라는 자를 피해 제나라에 와 있었다. 엄중자는 섭정이 매우 현명하고 의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인사를 나누며 사귀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황금 백 냥을 들고 섭정의 어머니 앞으로 나가 장수를 빌었다. 섭정은 많은 돈에 놀라서 사양하며 "저는 다행히도 노모님이 살아계시고 집이 가난해 객지로 떠돌며 백정 노릇을 하고 있지만, 조석(朝夕)으로 좋은 음식을 얻어 어머님을 봉양하고 있습니다. 어머님께 봉양할 음식은 충분하오니 당신께서 주시는 선물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엄중자는 솔직히 말했다. "제게 피맺힌 원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원수를 갚아줄 사람을 찾아 천하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이곳에 와서 당신의 용기가 매우 높다는 말을 듣고 단지 어머니 봉양에 보태 쓰시라는 뜻에 불과합니다. 서로 친교를 더하자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그러자 섭정은 "제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면서 시장바닥에서 백정 노릇이나 하는 까닭은 오직 연로하신 어머님을 봉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이 살아계시는 한 아직 제 몸을 감히 남을 위해 희생할 것을 응낙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엄중자는 예의를 다하고 떠났다.

세월이 흘렀다. 섭정의 어머니가 죽자 섭정은 장례를 치른 후 그를 알아준 엄중자를 만났다.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엄중자의 원수인 협루를 찾아 홀로 길을 떠났다. 협루의 집에는 무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지만, 단숨에 집에 뛰어 들어가 단칼에 그를 찔러 죽였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낸 후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낸 채 곧 죽고 말았다. 한나라 조정은 섭정을 효수(梟首)하고 시체를 시장에 내걸면서 그가 누구인지 아는 자에게 상을 걸었다. 하지만 아는 자가 없었다. 그러자 국상 협루를 죽인 자의 성명을 밝힐 수 있는 자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편 섭정의 누나인 섭영은 이 소식을 듣자 바로 내 동생이 분명할 거라며 한나라로 갔다. 시장에 가니 과연 동생 섭정이 확실했다. 통곡하며 "이 사람은 지읍 심정리 사람 섭정입니다." 많은 사람이 놀라며 어찌 그를 안다고 함부로 말하냐며 나무랐다. 그러나 섭영은 "나도 알고 있소. 원래 내 동생이 온갖 모욕을 무릅쓰고 저잣거리에 자기를 던져 살았던 것은 늙으신 어머님이 살아 계시고, 내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노모는 천수를 누리시고 세상을 떠나셨고, 나 역시 남편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선비란 마땅히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이제 동생은 누나가 살아있기 때문에 혹여 내가 연루되지 않도록 자기 몸을 알아보지 못하게 헤친 것입니다. 하지만 어찌 내 한 몸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여 현명한 동생의 이름을 그냥 사라지도록 하겠습니까." 그녀는 "하늘이여!"라고 크게 몇 번 외치고는 마침내 비애에 맺힌 오열이 극도에 이르러 섭정의 곁에서 죽었다.

신라 향가인 월명사의 제망매가에도 보면 '죽고 사는 길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단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라며 일찍 요절한 누이를 위해 지은 시도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죽은 동생 때문에 같이 목숨을 버린 예는 잘 보지 못했다. 얼마나 남매의 정이 도타웠으면 천 리 길을 달려가 죽은 동생과 함께 목숨을 버리겠나. 그 동생에 그 누나라고 할 만하겠다. 사기의 자객열전은 총 다섯 명이 등장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섭정 단 한 사람뿐이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취할 것은 못 된다 하더라도 결코 개인의 원한이 아닌 약자로서 정의를 실천하려는 의협심의 발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또 다르지 않을까 싶다.

개인주의가 더욱 팽배해가는 이 사회에서 정의와 의리가 무엇이며 신의로써 사귐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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