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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잠출 언론인
김잠출 언론인

몰염치.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공자는 염치는 인간의 기본적 도리라 했고 맹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참(慙)과 괴(愧)가 그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우면 참이요 남이 알까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괴이다. '부끄러움'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박완서의 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를 일독하길 권한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달포가 지났다. 새로운 단체장의 철학과 정치노선에 따라 공공기관장의 인사가 빨리 이뤄져야 하는데 울산은 전무하다. 기존 장들이 임기보장 운운하며 요지부동, 복지부동의 자세로 버티기만 한다. 선거는 심판이고 정권교체는 '너 나가'라는 시민의 명령이다. 하지만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선거 결과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4년 전 민주당 시장은 전문성보다 캠프 출신이나 측근들의 자리 배분에 나섰고 언론과 시민은 보은, 정실, 캠코더인사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철저히 정치적 셈법에 따라 기관장으로 낙점되었다. 어느 기관이 경영목표를 달성했는지 지역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선거 보은으로 얻은 자리라 임기 때까지 보전하는데 세월을 다 보냈으니 생계형 기관장이나 다름 아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처사다. 인사청문회 했다고 같은 당 시의원들이 모두 낙선한 이유를 모르지 않을 터.  일자리 구상은 모르쇠하던 후보, 다운계약서를 쓰고 과태료를 물어내고 땅주인과 소송을 한 후보도 모두 통과시켰다. 도덕성은 물론이고 지금의 성과를 보면 전문성도 필요충분조건이 아니었다. 

현재 울산시장이 임명하는 지방공기업과 출연기관장은 모두 13개 곳이다. 시청 본청과 외청의 개방형 직위 합치면 모두 23개에 이른다. 이들 중 절반이 넘는 13개 기관장의 임기가 내년에서 내후년까지 남았고, 올해 안에 임기가 끝나는 자리는 10개 남짓이다.

새 울산시장은 이들의 업무보고를 거부했듯이 앞으로도 일체 만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알아서 거취를 정할 때까지 합법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스스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 임기 보장 어쩌고 하는 말은 정치적 임면이라 적절치 않다. 자신의 임명권자가 낙선으로 물러나면 당연히 같이 나가는게 도리다. 지난 4년 울산시장은 4년 내내 시장 평가에서 전국 꼴찌를 차지했다. 일자리는 사라졌고 인구는 급감했다. 우리나라 선거제도는 승자독식, 단판제이다. 단 1%라도 지면 결과는 끝난 것이다. 시민이나 국민이 심판한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시장에 대한 심판은 그가 임명한 기관장에게도 같은 효과가 미친다. 억울하면 4년 뒤 다시 선거에 나서 심판을 받으면 된다. 

다행히 울산시가 출연기관장들의 '임기 버티기'를 막을 해법을 찾았다고 한다. 최근 야당이 제안한 정부 산하 기관장의 임기를 대통령의 임기와 맞추는 특별법 제정에 착안해, 지자체의 정무직 공무원, 지방공기업 사장, 출연기관장과 임원의 임기를 단체장과 일치시키는 '특별 조례'를 제정하는 방안이다. 이미 대구시가 전국 시·도 중 처음으로 이 같은 특별 조례안을 발의했고, 울산시도 특별 조례 제정을 놓고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특별 조례가 제정, 시행되면 임명권자인 단체장과 정무직 인사 간의 임기 불일치로 발생하는 소위 '알박기 인사' 폐해는 없어지고 더 이상 시비가 안 될 것이다.

그러니 부끄러움을 모르고 버티는 기관장들은 특별조례 시행으로 강제로 잘리는 추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조금이라도 배운 자의 태도를 보이는게 옳다. 부끄러움을 안다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 새 시장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 그게 공직자의 도리요 기본자세이다. 그냥 버티기만 한다면 자칫 참(慙) 괴(愧), 두 가지 부끄러움을 다 안게 될지도 모른다.

울산시도 대구시의 방안을 적극 도입하고 나아가  철저한 조직진단과 구조조정, 방만한 공공기관 경영에 대한 가혹한 감사에 나서 줄 것을 촉구한다. 언제까지 선의에 기대어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헌 부대가 찢어지고 새 시장의 시정 철학이 헝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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