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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10년 전 청와대 국민대통합본부에서 내 자서전을 무료로 만들어줬다. 월남 파병자, 서독파견 광부와 간호사, 중동 파견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산업 발전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대학생 6명을 한 조로 하여 자서전을 만들어줬다. 
 
그 결과 나는 처음으로 60년 인생을 정리한 자서전이 생겼다. 대학생들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서전을 만들다 보니 인생 역정을 들으며 배울 점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나는 말로 하고 그것을 녹음하고 책을 만들려니 대학생 팀을 10차례 정도 만났다. 찻집에서도 만나고 음식점에서도 만나 술도 겸했다. 그 결과는 젊은 세대와 우리 노인 세대와의 소통으로 세대 차를 넘어 가까워지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명한 명사도 아니고 일반인이 자서전을 제 돈 들여 만들기는 어렵다. 팔리는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자체나 사회봉사단체에서 지원해 줘야 한다. 그런 단체에서 공적으로 나서면 출판 비용을 많이 절감할 수 있는 노하우나 파워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자원봉사 방식으로 나섰고 만날 때마다 식사비와 차 값은 내가 냈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으로 치면 그래야 맞다.
 
개인적으로는 자서전을 만든 것이 보람이다. 자서전은 평생 일기를 써 온 사람이 아니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다. 대략 시대별, 연령대 별로 중요한 뼈대를 잡아 놓고 살을 붙이면 된다. 우리 세대는 격변의 세월을 겪어 왔기 때문에 잘 생각해 보면 기억의 편린들이 하나씩 모여 누구나 그 시대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간 어디 처박아 놓았는지도 모르던 사진들을 찾아 정리하는 계기도 된다. 지나온 삶에 대해 돌아 보면서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여생에 대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틀이 잡힌다.
 
개인적으로 자서전을 써준 적도 있다. 일반인들은 자료가 부실하다. 우리 과거 시대에는 카메라 있는 집이 드물어 사진도 없거나 있어도 어디 뒀는지 못 찾는다. 기록에 대해 무심하게 살아온 탓이다. 이 일을 계기로 친 척집을 찾아다니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 관련 사진을 찾아 보기도 한다. 자신의 철학이나 주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많다. 좋았던 일, 후회되는 일, 죽기 전에 풀어야 할 일 등, 자서전을 쓰면서 그런 것들이 어렴풋이 만들어진다.
 
내가 써준 자서전 중에 사회적으로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있었다. 중소기업 사장이었는데 모교 총동문회 발전을 위해 거금을 희사하고 그 외에도 한 일이 많았다. 우리나라 소년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역시 큰 족적을 남겼다. 문중 조상 중 존경받을 만한 학자가 있었는데 알려져 있지 않자 학계에 세미나 등을 열면서 연구소까지 운영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자서전이라면 대여섯번 만나 녹취를 하고 나면 자서전이 만들어지는데 이분은 작고하신 분이라 주변 사람들 얘기와 고인의 자료를 중심으로 어렵게 작업했다. 미망인이 중심이 되어 회고록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고인과 친했던 주변 사람들이 모여 적극적으로 편집에 참여했다. 무려 일 년 동안 고생해서 고인의 일주년 기념일에 회고록을 진지하게 봉헌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자서전 내지는 고인이 남긴 기록물을 중심으로 책을 만드는 작업도 뜻있는 일이다. 지인 중 한 명은 교사로 재직하던 아내가 병사하자 아내의 상실에 크게 상심했다.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고인이 제자들에 보낸 편지 원고, 제자들이 보내온 편지들을 찾아내고 책으로 만들었다. 사랑하는 아내는 죽었지만, 책을 만들어 추념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수가 적은 사람이 많다. 세대 차이도 나서 직접 키운 자녀세대와도 소통이 안된다. 친척 간에는 더욱 그렇고 조카들과는 더 멀다. 그럴 때 자서전은 소통과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 세대가 어떤 역경을 겪었고 어떻게 극복했으며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 자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을 밥상에서 하면 듣기 싫은 공치사 또는 재미없는 잔소리가 되고 술상에서 하면 자칫 술 주정이 된다. 자서전을 한 권씩 주면 그 안에 다 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배울 점이 많다. 오히려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며 다가온다. 자서전의 위력이다. 
 
요즘은 POD(Publishing on Demand)라 하여 주문자 제작 방식이다. 초도 의무 출판 부수가 필요 없고 필요한 부수만큼만 만드는 경제적인 방식이다. 표지 디자인을 제공하면 거의 돈이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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