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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영 남구 주민참여예산심의위원장  

여름이다. 땡볕이 몹시 뜨겁다. 많은 인내를 요하지만 시원한 메밀국수가 입맛을 돋우니 이 또한 계절의 풍미다. 메밀은 동의보감에도 그 효능이 기록돼 있을 만큼 우리에게 유익한 음식으로 각인돼 있다. 우선 균형 잡힌 식단을 보장한다. 다양한 영양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여름이면 밀가루 국수 대용으로 즐겨 먹곤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직장인들에게는 여름 정기 휴가만 한 게 없다. 가족들과 모처럼 도시를 벗어나 유명 피서지나 관광지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시기다. 친구들과 여유있게 여행이나 운동을 즐기면서 소중한 추억도 쌓고 우정도 더욱 돈독히 하고픈 때이기도 하다. 여름은 역시 휴가가 제격인 계절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오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올해는 이런저런 이유로 '휴포족'(휴가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 전만 해도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당연히 이번 여름휴가 때는 해외여행객이 늘어날 것으로 점쳐졌다. 억눌렸던 욕구가 한순간에 터져 나올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홈쇼핑에서는 일찌감치 여름휴가 특수를 대비해 다양한 여행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베케플레이션(vacaflation)'에 꽉 막혀 버리고 말았다. 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vacation)과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한 베케플레이션이 젊은 세대들에게 또 하나의 유행어가 되고 있다. 천정부지로 뛴 비행기 삯과 고물가로 휴가를 포기하거나 최대한 휴가비를 아끼는 '짠물 휴가'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다. 국내외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카페의 게시물에는 급격히 오른 항공권과 호텔 가격에 여름휴가 계획을 포기한다는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고물가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부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억눌린 보상 심리를 여행 수요로 표출하고 있다. 참으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시장경제 논리를 들이대고 자본주의 체계를 핑계 삼아 애써 참는다. 그렇지만 속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국내 특급 호텔은 만실 행렬이란다. 부산 해변에 자리한 특급 호텔은 주중, 주말 관계없이 객실 예약이 90% 이상 꽉 찼다고 한다. 전년 대비 전 객실 금액이 10% 이상 인상됐음에도 말이다. 해외여행 수요도 예상을 뒤엎는다. 해외 항공권 가격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2~3배 가까이 올라도 아랑곳없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국제항공료는 전년 동월 대비 21.4% 증가했다. 국내항공료 19.5%, 국내단체여행비 31.4%, 승용차 임차료 28.9%, 보험서비스료 14.8% 등 여행·관광과 관련한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큰 폭으로 올랐다. 해외 항공권 가격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2~3배 가까이 오른 상황이다. 오는 7월 말 출발하는 이코노미석 기준 '인천~뉴욕' 왕복 항공권 가격은 320만~590만 원이다. 유럽은 '인천~파리' 왕복 항공권 가격이 230만~390만 원, '인천~런던'은 250만~370만 원에 달한다. 
 
국내 여행도 만만찮다. 예상 경비는 코로나19 사태 전 해외여행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숙박 비용이 급격히 치솟은 상황이다. 지금의 추세라면 대기업의 휴가가 몰리는 8월에는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한쪽에서는 '보복 소비'의 영향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휴포족'이 속출하는 '여름휴가 양극화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게 다 세상사인 걸 말이다. 자칫 '여행'이란 좋은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변질되지는 않을까 우려될 따름이다.
 
'여행'은 마음을 위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굴뚝 없는 산업'으로 여기며 미래의 먹거리로 각광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마음 편히 여름휴가 해외여행을 계획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팍팍한 경제 여건에 시달리고 있음이다. 그렇다고 한여름 무더위를 '집콕'으로 달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마 가족과 함께 바닷바람이라도 쐐야 할 것 같다. 요즘 해변을 빗질하듯 바다 표류물이나 쓰레기를 주워 모으고, 나아가 이를 재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유행이라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일명 '비치-코밍(beach-combing)'이다. '일석삼조'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아직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매력적인 휴가를 한 번 보낼까 한다. 핑크 플로이드의 '머니(Money)'를 들으며 '비치 코밍'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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