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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삭 글·신소담 그림
김이삭 글·신소담 그림

할머니가 상춧잎을 땁니다.
한 잎
두 잎
세 잎
소쿠리에 포갠 잎

한 층
한 층
탑이 되어 갑니다.

"할무이, 그만 들어가입시더."
"몽골 외가 간 너그 어매 언제 올랑가?"
할머니가 뻐근한 허리를 잠시 폅니다.

학용품이 되고 
삼촌 등록금이 되고
약값이 될 상추탑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와도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
달님이 상추탑을 환하게 비춥니다.

조희양 아동문학가
조희양 아동문학가

오옷, 상추가 탑이 된다고요? 그러면 탑도 씨앗이 있는 거네요. 그 작은 씨앗들이 반드시 탑이 되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는 거잖아요. 그 순한 잎들이 소복소복 모여서 무럭무럭 자랐다는 거잖아요. 그 상춧잎들이 차곡차곡 소쿠리에 보드라운 탑을 쌓았다는 거잖아요. 
 그 탑 한 층, 한 층이 손주들 학용품값이 되고, 할머니 약값이 되고, 삼촌 등록금이 되어 아름답게 허물어졌다는 거잖아요. 기특한 상추탑을 칭찬합니다.

 그러면 손도 발도 없는 상춧잎들은 어떻게 탑이 될 수 있었을까요. 네, 그래요. 한때는 상춧잎처럼 연하고 싱싱했지만, 이젠 시든 상추꽃 같은 할머니가 도왔지요. 마치 말꼬리 잡기 놀이하듯 상추 탑 내력을 헤아려 봅니다. 

 옛날 옛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지대석으로 탑 밑돌이 되어 낳은 자식이 누군가의 부모로 하대석이 되고, 그들의 자식이 상대석이 되어 가족 탑도 쌓았구나, 새삼 자기 위에 기꺼이 무엇을 모셔서 보호하고 돕는 탑의 역할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위대한 가족탑을 칭찬합니다.

 할머니가 쌓은 상추탑에 올려진 삼촌과 손주도 언젠가는 가정을 이루고 기꺼이 가족을 위한 탑의 씨앗을 심고 가꾸겠지요. 혼자서는 될 수 없는 탑. 밀쳐내면 될 수 없는 탑, 무게를 견디지 않으면 될 수 없는 탑, 저마다 품고 견디어 마침내 탑이란 이름을 얻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니 주위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예사로 안 보입니다. 

 김이삭 작가의 '상추로 쌓은 탑'은 시 그림책입니다. 할머니의 정성으로 자란 상춧잎처럼 커다랗고 넉넉한 그림책이네요. 읽는 사람도 상춧잎처럼 마음 품이 넓어집니다. 
 김 시인의 특별한 할머니 사랑은 익히 아는지라, 그리운 할머니께 올리는 헌서(獻書)가 아닐까 싶습니다. 손녀의 마음 책을 받은 할머니는 상추탑 머리에 이고 장에 팔러 가시듯, 사랑하는 손녀의 책을 품고 하늘동네 이집 저집 자랑하러 가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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