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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을 지역구로 두었던 최병국 전 국회의원(3선·울산 남구갑)과 강길부 전 국회의원(4선·울주군). 한때 울산을 대표했던 정치인들이었지만 지금은 정치일선에서 퇴진한 원로들이다.  두 사람 모두, 1942년생 임오년 말띠다. 법조계와 행정관료 출신으로 늦깎이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이제 울산을 먼 발취에서 고향 울산을 이야기하며 노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점도 닮은꼴이다. 최 전 의원은 12년간, 강 전 의원은 16년간 국회의원으로 울산 발전의 큰 그림을 그려왔다. 고향 울산 땅이 아닌 서울에서 가족들과 생활하고 있는 두 정치계 원로로부터 오늘을 사는 이야기와 옛날의 기억, 그리고 이들이 경험하면서 느꼈던 정치 등 소소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가졌다. 편집자

 

최병국 전 국회의원
최병국 전 국회의원

최병국 전 국회의원 "정치신인, 저항 극복할수 있는 결기 가져야"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정치 일선에서 퇴진하고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독서도 하면서, 시간 있을 때마다 고향 사람,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보낸다. 특히 주말에는 30년 이상 해온 산행은 꾸준히 하고 있다. 아직 국민의힘 상임고문이라는 직함을 갖고는 있지만 영향력 있는 활동도 아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치적인 움직임은 거의 자제하는 편이다. 다만, 재경울산향우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향우회 조직에 대한 논의를 위해 관계자들과 만남을 가져왔다. 지난 2019년부터 재경울산향우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고향 울산을 위해 무엇인가 기억에 남는 일을 해보고자 했지만 공교롭게도 코로나19 때문에 만남의 기회가 적어 활성화를 이루지 못한 점이 아쉽다. 다른 시·도 향우회처럼 좀 더 체계적이고 활력적인 향우회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최근 고향 후배인 박기준 변호사에게 회장직을 넘겨주는 하례회 행사를 가졌다. 보다 활성화 된 재경울산향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정계에 입문하게 된 동기나 배경은?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정치에 대해 전혀 몰랐고, 검사 임용 이후 오직 검사로서의 직분만 다하면서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대공 공안부장, 대검중수부장 등의 검찰의 굵직한 역할과 책임을 맡아하면서 뉴스의 중심인물로 등장하기도 하면서 외부의 권유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유혹을 여러 차례 뿌리쳐 왔고 그것이 화근이 돼 검사장직을 내 던져야 했다. 정치를 하게 된 것도 검사장직을 그만 두고 난 이듬해인 2000년부터이니까 정치라는 세계를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계에 발을 디디게 된 셈이다. 정계 진출은 결국 타의에 의한 사회 분위기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전에 정계에 진출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이나 목표 없이 생활정치인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지역국회의원 활동이 16대에서 시작해서 18대까지 3선으로 이어지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정치에 대한 생각은?
△학업을 위해 울산을 떠나야했고, 검사활동을 하면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고향 울산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16대에서 18대까지 3대 12년간 정치 일선에 있으면서 고향을 위해 땀 흘릴 수 있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문득, 삼성의 고 이건희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이건희 회장은 "기업은 2류고 행정은 3류며, 정치는 4류다"는 말로 국내 정치 수준을 낮게 평가하면서 정치권의 반발을 사 개인적으로 홍역을 앓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이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정치가 사회통합을 오히려 해치는 주요 원인이 돼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공천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일도 있지만 우리 정치에 있어서 공천제도는 절대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공천제도를 바로 잡기 위한 나름의 움직임을 갖기도 했지만 심한 저항에 못 이겨 중도에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도 정치활동은 그만큼 버겁고 힘든 일이었다.
 
-정치활동을 하는 동안 특별히 기억이 남는 일이 있다면.
△법조계 출신 정치인으로서 법을 만드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공익적인 일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어떤 분이 천마리의 종이학을 접어서 선물로 보낸 적이 있다. 의원으로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게하는 큰 활력소가 된 것 같다.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고 만들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잡았던 기억이 새롭다.

-정치지망생에게 한 마디.
△종종 정치를 하겠다며 물어오는 젊은이들이 있다. 나 역시 갑자기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내공을 쌓는 일이었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계발이 우선이다. 막연하게 지금까지 쌓아왔던 역량을 발휘해 지역 발전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상투적인 말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목적,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이 명확치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갖지 않은 나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성정치인들을 향해 많은 변화와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젊은 정치인은 이 대표처럼 결기와 강한 도전의식과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그가 겪는 시련은 기성 정치와의 대결에서 어쩔 수 없이 대면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같은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각오와 결기가 있어야 한다.
 
-국내 정치에 대한 요즘의 생각은?
△국내외 정세가 너무 혼란스럽다. 지도자들이 조금만 더 현명하고 지혜로웠으면 한다. 일본, 미국, 북한 등과의 관계 속에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이념과 판단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친일파, 우파, 좌파 등 언제나 네 편 아니면 적이라는 대결구도는 지양해야 한다. 상대를 포용하고 배려하고 인내하는 자세의 넓은 정치행보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강길부 전 국회의원
강길부 전 국회의원

강길부 전 국회의원 "신예들, 지방정치 하려면 실력부터 쌓아야"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요금 복지시설이 너무나 잘 갖춰져 있다. 행정복지센터에체육시설을 이용하기도 하고, 치매안심센터에서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는 프로그램을 수강중에 있다. 가끔씩 지인들과 골프도 치고, 둘레길을 둘러보기도 하고 우리 주변에 노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다.
 
-울주서 도서관 명예관장으로 활동 소식도 있었는데.
△지난 20대 총선 불출마를 결정하고 난 이후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면서 살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난 2020년 5월부터 선바위도서관의 무보수 명예관장으로 잠시 활동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책을 마음껏 읽지 못했던 아쉬움이 늘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소장하고 있던 책과 서화작품을 기증하기도 했는데, 명예관장으로 활동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늘 옆에 있을 것으로 알았던 아내가 세상을 등지면서 결국은 더이상 울산에 머물지 못하고 그해 겨울 가족들이 있는 서울로 오게 되면서 먼 발취에서 울산을 그리워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정계에 입문하게 된 동기나 배경은.
△평생을 행정관료와 강의 등을 하면서 살았다. 정치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던 분야다. 그런 나에게 지난 2004년 울산상공회의소 회장 출신이던 고 고원준 씨 등이 정치활동을 하자며 권유를 해왔다. 당시 나의 나이가 60살이 넘은 때이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관심과 생각은 전혀 갖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정치참여를 권유해왔다. 그 때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된 것이 나의 정치인생의 시작이었다. 
 
-정치적 행보가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정치 이력을 두고 배신자 또는 철새 정치인이라는  소리들을 한다. 나는 애초부터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그것이 최고인 줄 알았던 사람이다. 때문에 정치적 계보도 없었고, 패거리에 엮여서 우왕좌왕하지도 않았다. 한 때는 정치를 하기 위해 든든한 지기기반이 필요한데 공천을 주지 않으니 탈당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통해 무소속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오직 나의 정치 행동은 내가 사는 울주, 내가 사랑하는 울산과 울주만을 위해 일 할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정치 관료 출신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는지.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 33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때문에 행정적인 현안들은 누구보다 쉽게 파악하고 해결책도 찾을 수 있었다. 기억이 남는 것 중에는 빠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던 경부고속도로 울산구간의 도로 확장사업이다. 4차선을 6차선으로 넓히기 위해 공무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함양 울산 간 고속도로의 조속한 추진을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투입했다. 갖은 노력 끝에 함양 울산 간 고속도로 사업이 추진이 됐지만 종점이 언양에서 끝이 나는 것을 보고는 울산 공단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결국 지금의 청량IC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 거기에다 불가능하다고 했던 배내골 IC를 산속에 개설하는데 역할을 했던 기억도 새롭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국토교통부의 전신인 건설교통부 차관 등을 맡았던 이력이나 경험이 울산권역 사업 개발에 적잖은 도움이 됐던 것은 사실이다. 또 다른 보람을 찾자면, 울산에 UNIST와 같은 연구중심의 과기원을 들어설 수 있게 하는데 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은 과기원이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사랑과 애정이 필요하다. 

-울산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가?
△국회의원이 되고 온산공단, 울산공단 등을 처음 둘러보는 동안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작은 농어촌에 불과했던 울산이 공단도시로 탈바꿈하면서 웅장한 공장시설이 자리를 잡았고, 울산의 발전 동력이 됐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 없다. 울산을 이웃한 경주, 부산, 양산 등에는 울산이라는 먹거리를 두고 중소업체들이 생겨나고 양질의 주거단지들이 조성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울산에 머물러야 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타지역으로 떠나가고 있다. 중소업체들이 자리 잡고 근로자들이 머물 수 있는 정주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공무원들의 원칙과 보신 위주의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하고, 거기에 지역 언론 역시 올바른 지적과 바른 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타지에서 바라본 울산은 너무나 활력 있고 매력 있는 도시이다. 내 고향 울산이 더욱 정감 있고 살아 있는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치 지망생들에게 한마디.
△내가 정치를 시작한 것이 60살이 넘은 때였다. 그런데도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20~30대 정치지망생들이 정치를 하겠다며 상담을 하고 면담을 했던 당시, 나는 한결같이 실력을 갖추기를 권했다. 나 자신이 아닌 지역과 국민을 위해서 일하기 위해서는 한치의 자극에도 흔들림 없는 정치 철학이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 지방정치는 생활정치다. 더 많은 봉사와 더 많은 실력 쌓기 등 착실히 내공을 다진 후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우수기자 jeus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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