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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훈 수필가
오병훈 수필가

여름 과일이라면 먼저 복숭아 자두 살구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을 게다. 그리고 수박과 참외도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마당에 있는 우물 속에 수박을 넣었다가 저녁에 가족이 다 모였을 때 차게 식은 것을 꺼내 갈라 먹었다. 지금이야 재배기술이 전문화 되었고 대량생산에 따라 당도가 매우 높아졌다. 더구나 전에 비해 값도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수박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에는 털수박이 없다. 농산물도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선진국이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전에는 수박을 사면 으레 꼭지 부분을 세모지게 도려내서 속을 보고 잘 익은 것을 골랐다. 속이 새빨갛게 익었으면 세모로 파낸 것을 다시 꽂아 그물에 넣어 집으로 들고 왔다.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덜 익은 수박이 많아서 속아 사지 않으려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이다.

 수박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 때가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다. 허균이 쓴 조선시대의 요리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고려 말 삼별초군과 겨루었던 몽고군의 장수 홍다구(洪茶丘)가 처음으로 수박을 들여와 개성에서 재배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연산군실록에 처음 수박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연산군일기 47권, 연산 8년 12월 9일자 기사에 임금이 북경(北京)에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박을 구해 오도록 했다. 장령 김천령(金千齡)이 아뢰기를, '지금 듣건대 수박 종자를 얻으려고 한 것이겠으나 신이 일찍이 북경에 갔을 적에 들으니, 중국의 수박이 우리나라 것과 그다지 다른 점이 없다고 했습니다. 수개월이 걸리는 노정(路程)에 반드시 상하게 될 것이니 우리나라에는 이익이 없고 저쪽 나라에게 비방만 받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박을 널리 재배했다는 말이다. 선조때 글을 쓰고 광해군때 허균이 펴낸 동의보감에도 약재로 기록했다.

 수박의 원종은 남아프리카 건조지역 원산으로 알려져 있다. 4,000년 전 이집트 시대에도 재배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지중해의 로마제국을 거쳐 중앙아시아 각국으로 전해졌고 10세기경 터키인이 동서 무역을 하면서 소아시아와 인도에 전했다. 그후 중앙아시아 사막국가로 부터 중국에 전해져 동아시아로 퍼져나갔다. 물이 많은 박이라 하여 수박(水박), 수과(水瓜)라 하고 서양에서 들어온 외라고 하여 서과(西瓜)라고 한다. 영어로는 워트멜론(water-melon). 재배 역사가 긴 만큼 수많은 품종이 있다. 열매의 모양에 따라 둥근 것, 크고 길쭉한 것, 작고 타원형인 것이 있고 껍질에 얼룩무늬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청록색인 것, 노란 것도 있다. 과육이 붉은 것과 노란 수박도 있다. 보통 수박의 무게는 2~3킬로그램이지만 큰 것은 20~30킬로그램이나 되는 것도 있다.

삽화. ⓒ왕생이

 최근에는 주먹보다 조금 큰 타원형 수박을 재배한다. 이런 품종은 덩굴을 시렁에 올려 늘어지는 열매를 거둔다. 한 그루에서 여러개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껍질이 얇아서 깎아 먹는다. 수박에 씨가 많아 먹을 때 성가시다고 하여 씨없는 수박을 길러내기도 한다. 수박의 육종기술 발달로 맛과 향이 좋고 씨가 적은 것을 골라 널리 심고 있다. 현재 수박의 명산지는 고창, 광주 무등산이 널리 알려져 있다. 

 수박은 씨가 많다. 그래서 민화에서는 다산과 다복을 뜻하는 그림으로 표현된다. 책가도나 기명절지 같은 민화에서는 수박을 그려 다복과 다남을 기원했다. 또 수박의 발음이 수(壽)와 같다고 하여 수명장수를 뜻하는 상징물로 보았다. 수박 흥정이란 말이 있다.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말에 현혹되어 거래를 한다는 뜻이다. 또 수박 겉핥기는 겉모습만 대충 살피고 지나친다는 뜻이다. 수박 먹다가 이 빠진다는 말은 일을 너무 쉽게 처리하다 보면 자칫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리라. 수박을 통해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여름 한 철 보름날 저녁이면 수박을 갈라놓고 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먹었다. 이때 반드시 씨를 뱉지 않고 씹어 먹고 마지막 한 개는 남겼다. 몽고인을 모조리 죽이고 한 명만 남기겠다는 결의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침략과 굴욕을 느꼈을까 싶기도 하다. 같은 수박을 두고 몽골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먹었다. 중국인의 보복을 두려워한 오랜 관습인 까닭이다. 
 오늘은 수박 한덩이 사다가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잠시나마 더위를 씻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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