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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블루 Blue', 2020년, 종이에 연필, 가변크기.
박소현, '블루 Blue', 2020년, 종이에 연필, 가변크기.

오늘날 디지털 사회에서는 물리적 크기의 가장 작은 단위를 픽셀로 정의한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 가상 화면의 문자와 그림은 이 '사각형 점'들이 모여 형성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픽셀은 시각적으로 친숙하고, 디지털 이미지를 확대했을 때 더욱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 컴퓨터 그래픽 단위는 예술에 다양하게 수용되어 나타나는데, 미술가 박소현은 이러한 픽셀 이미지를 추상적 패턴의 드로잉으로 해석했다. 

작가는 디지털 사진의 부분을 확대하고, 그것을 연필로 섬세하게 그려낸 작업을 보여준다. 박소현의 대표작 '블루 Blue'(2020)는 풍경 사진 속 하늘을 그래픽 프로그램을 통해 바둑판 형태의 픽셀이 보이도록 확대하고 그 컴퓨터 화면을 연필로 옮긴 30장의 세밀화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작가가 디지털 화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적 형식으로 변환하였다는 데 있다. 맑은 대낮의 하늘 이미지를 대상으로 삼은 작가는 색을 제거하고 연필로 나타낼 수 있는 명암 효과만을 사용하여 픽셀의 집합을 그려냈다. 낱장의 그림들은 또한 컴퓨터 화면의 열과 행으로 이루어진 격자형이 아니라 부드러운 곡선의 형식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비정형의 세포나 단세포 생물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의 또 다른 이면에는 이와 같은 아날로그 생태의 최소 단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손혜란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손혜란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디지털 세계 속에 존재하는 아날로그 자연은 디지털 사진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일정한 유형이 반복되는 디지털 화면의 질감을 드러내고 30장의 그림들을 체계적으로 배치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를 밀집된 세포들처럼 보이도록 했다. 물질적인 자연의 연속적인 이미지와 디지털 화면의 픽셀 이미지의 유사성을 드러낸 작품을 통해 작가는 컴퓨터 화면에서 아날로그 유기체의 특성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픽셀 단위와 원자 단위의 융합을 추구한 박소현의 작품은 디지털 세계와 아날로그 세계를 넘나든다. 작가는 현실 세계를 축소한 가상 세계를 확대하고, 그것을 다시 자연의 원초적 형태로 변환했다. 현 인류는 디지털 기기와의 접촉과 아날로그의 삶에 뚜렷한 경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가상과 현실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는 세계임을 드러냄으로써 누구나 디지털 이미지 속 파란색 하늘을 찾아내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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