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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훈 수필가
오병훈 수필가

어제는 제77주년 광복절이었다. 암울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조국 광복을 위해 거친 광야를 달리는 광복군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오로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부모와 처자식을 두고 고향산천을 떠나야했던 젊은이들. 그들은 태극기 아래 한 뜻으로 뭉쳤다. 그리고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가슴에 흰 무궁화를 새기고 단심을 찍었다. 광복절 무렵이면 전국 방방곡곡에 무궁화가 피어 겨레의 가슴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굳건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무궁화는 나라꽃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꽃이기에 의미는 더 깊고 크다고 하겠다. 먼 옛날부터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이상적인 꽃 무궁화. 추위에 강한데다 토양에 대한 적응력이 세고, 무엇보다 그 모양이 군자의 기상을 지닌 꽃이라 했다.
 무궁화의 원산지가 밝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도 북부와 중국 운남성, 사천성 일대에서 야생 무궁화가 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반도에서는 아직 무궁화 자생지가 발견된 적이 없다. 현재 우리가 재배하는 무궁화는 위도상 가장 북쪽에서 자란다. 온대성 낙엽활엽수로 한반도에서는 평안도까지 자라고, 그 위쪽에서는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한다. 산지에 자생하는 무궁화나무가 없다는데서 외래식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무궁화의 우리 이름에 대해 김정상은 무궁화보에서, '전남 완도군 소안면 비자리 앞 바닷가에서 자라는 수십 주의 굵은 무궁화나무를 보았다. 마을 노인들은 무우게라고 부른다'고 적고 있다. 중국의 옛 지리서 산해경에는 이미 우리나라를 근역이라 하였고 고금주에는 목근화라 하였다. 무궁화는 나무인 목근(木槿)과 풀꽃인 순(蕣)으로 크게 나눈다. 시경에서는 아름다운 여자를 무궁화에 비유했는데 이때의 순(蕣)은 초본성 관목인 부용을 말한다.
 박민웅(朴敏雄)의 '창암집(滄巖集)'에 따르면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오면서 무궁화(槿花) 종자를 가지고 와 이 땅에 심었다. 홍백 두 종이 있다(椰箕子東渡時 以槿花種字 隨之而植 之本土故謂之 紅白二種)'고 썼다.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전래된 최초의 기록이 아닌가 한다.

삽화. ⓒ왕생이

 조선조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다홍 보라 노란 무궁화를 꽂게 했는데 이것이 어사화였다. 궁에서 간단한 잔치에도 신하들의 사모에 무궁화를 꽂고 이를 진찬화(進饌花)라 했다. 물론 지금 우리의 가장 큰 훈장도 무궁화대훈장이다. 무궁화는 꽃이 별로 많지 않은 여름에 핀다. 예기 월령(月令) 편에 '이 달이면…… 반하가 자라고 무궁화가 핀다'고 했다. 7월부터 피기 시작해 서리가 내리는 10월까지 끊임없이 피고 진다.
 무궁화에 뼈아픈 수난은 일제치하인 1933년 11월부터 시작되었다.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를 통한 민족혼 고취운동이 탄로 나는 소위 '무궁화 사건' 이후 일제는 전국의 무궁화를 죄다 뽑아버리게 했다. 무궁화를 보고 있거나 만지면 눈병이 나고 부스럼이 난다는 등 갖은 악소문을 퍼뜨려 무궁화를 멀리하도록 했다. 그도 모자라 무궁화는 꽃이 지저분하고 벌레가 많이 꾀는 몹쓸 나무라고 어린이들에게 세뇌 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무궁화는 변소 옆이나 담 모퉁이로 밀려 났다. 천대 받는 꽃이 되어 광복 반세기를 맞았고, 아직도 그 명예를 충분하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도 한국무궁화연구회 등 많은 단체가 무궁화 선양운동을 벌이고 있다. 육종학자들은 무궁화 품종 개량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배달, 화랑, 아사달, 사임당, 한빛 등 우리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100여 개 품종도 개발해 냈다.
 우리는 나라꽃을 가꿀 줄 모른다. 관청에 심은 것이나 공원, 심지어 식물원에 심은 무궁화라 해도 가지를 죄다 잘라 장작개비를 만든다. 해마다 계속 강전정을 하다 보니 줄기가 웃자라게 되고 꽃이 적게 핀다. 체내에 양분을 저장하지 못해 결국 말라죽고 만다. 그래서 전국의 무궁화가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무궁화가 잘 자라 키를 넘으면 안 되는 줄 안다. 그저 울타리나 하겠다고 나라꽃을 구박하고 있으니 무지한 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무궁화는 절대로 가지를 잘라서는 안 된다. 볕이 드는 곳에 심고 가만히 두면 스스로 동그란 수형을 이루고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꽃이 핀다. 이름 그대로 무궁한 영광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나무로 자라게 된다. 제발 무궁화 가지를 자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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