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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련 동화작가
장세련 동화작가

올해도 광복절을 맞아 일제 강점기의 이야기들과 애국지사들의 활약을 다룬 방송이 많았다. 77주기 광복절을 보내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들에 씁쓸했다. 일제 치하에서의 삶이 어떠했기에 파고 또 파낼 사건들이 있나, 싶어서다. 하긴 놋그릇을 걷어 간 것은 물론 소나무까지 수탈 대상이었다니 그럴 만도 하다. 
 '안녕하세요, 소나무할아버지'(정임조/동쪽나라)는 일제의 마지막 발악을 그려낸 이야기다. 여덟 편의 단편동화를 엮은 책의 표제작으로 제목으로 내걸기에 걸맞은 작품이다. 가족과 함께 놀이동산에 갔던 아이는 숲속에서 초록머리 할아버지를 만난다. 젊은 날 씩씩한 기상을 빼앗으려는 늑대들의 횡포와 수탈에 맞섰던 초록머리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어린 주인공의 동심은 희망이다. 남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가 아니어서 흐뭇하다. 초록머리 할아버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안내문을 읽고 중얼거리는 아이의 인사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다. 초록머리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송탄유 공급을 위해 일본이 저지른 만행으로 수피가 벗겨진 채로 살아남은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극심한 고초를 꿋꿋이 견뎌낸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늘 푸른 기상이 느껴지는 소나무할아버지는 늙어서 기력이 쇠한 모습은 아니다. 소나무할버지가 겪은 일제의 만행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모습에는 다정하면서도 오히려 단단한 의지가 느껴진다. 만행을 저지른 일본을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마음 넉넉한 당부로도 읽힌다. 비록 다리 부분의 껍질이 벗겨진 모습이지만 소나무할버지는 여전히 든든하다. 인간이든 식물이든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동화라 가슴이 아리면서도 뭉클하다. 설령 일본인들이 읽는다 해도 반감보다는 진정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할 것 같다. 

 잘 자란 소나무는 보고만 있어도 참 좋다. 싱싱하고 건강한 이야기를 쏟아낼 것만 같은 초록의 이파리들. 그 앞에서는 저절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깊게 들이쉬는 숨결을 따라 푸른 피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듯하다. 몸속의 낡은 것들은 푸른 기운에 쫓겨 날숨에 실려 나올 것만 같다. 솔잎은 사실 이파리라는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오히려 가는 줄기 같은 솔잎의 짙푸른 색에서도 위안을 얻곤 한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늘 푸르름을 잃지 않는 나무. 오래 보고 있노라면 그 기상이 내게로 전해질 듯하다. 바위산의 둔덕에도 뿌리내려 꿋꿋이 자라는 나무가 소나무다. 가지가 바람에 휘어 등이 굽은 채로도 푸른 잎은 여전이 무성하다. 이런 기상은 우리에게 삶의 의지를 깨우치는 교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소나무를 보면서 할아버지라는 호칭과 연결지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수령과 상관없이 늘 젊은이의 모습으로만 인식했던 소나무가 달리 보일 것 같다.

 책 속에는 환경문제를 다룬 '신갈나무 도토리 가지가 댕강'도 있다. 도토리거위벌레 때문에 벌어지는 숲속 동물들의 재판이 중심 줄거리다. 재판과정의 재미에 빠져 읽다 보면 슬그머니 뉘우치게 되는 것, 우리가 환경문제에 무관심했다는 생각이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창궐이 땅속 온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나를 돌아보게 된다.
 가족의 이야기들은 특히 따뜻하다. '할머니는 치매 중'과 '제비'가 그것이다. 할머니의 치매를 대하는 가족들의 자세가 조금도 억지스럽지 않다. 치매 가족의 현실과 다를 수는 있지만 초기 치매의 경우 가족의 이해와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한다. 소를 가족처럼 여기는 할아버지의 마음에 짐짓 숙연해지는 이야기도 있다. '제비'가 그것이다. 새로운 둥지를 튼 제비 가족을 핑계로 다시 소를 키우려는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훈훈하다.

 '래고라는 이름의 고래와'는 고래와 어린이와의 교류가 주제다. 푸른천에서 만난 고래와 하루를 보내는 어린 주인공 '바다'에게 감사하는 래고. 땅 위에 살면서 바다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데서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을 읽어낸다. 래고가 바다를 이해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누구에게도 바다를 사랑하라고 외치지 않는다. 
 "우리 고래들에게도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이 사는 땅 위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이름을 짓지 않거든. 바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다를 사랑한다는 뜻이고, 고래를 사랑하는 뜻이기도 하니까."
 래고는 바다에게 무한한 신뢰를 내비칠 뿐이다. 신뢰와 소통을 표방한 래고의 말은 독자에게도 정말 바다를 사랑하지 않으면 더는 고래를 만나지 못할 거라는 은근한 압박이기도 하다. 고래를 거꾸로 발음한 래고. 그 이름에서 문득 바다를 함부로 대하다가는 우리 역시 고래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자각과 함께, 자연도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진리도 되새김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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