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수
  • 2022.08.1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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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이상수 수필가
이상수 수필가
이상수 수필가

네모진 바다가 찰랑거린다. 철판 가마에는 섯을 통과한 바닷물이 가득하다. 가마쟁이는 불이 골고루 잘 지펴지도록 땔감을 엇갈리게 놓는다. 불이 약한 안쪽으론 소깝을 빙글빙글 돌리며 던져 넣고 바깥쪽엔 쪼갠 통나무를 대어 불길을 살린다. 염포 소금포 역사관에서 울산 자염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는 중이다. 

소금을 얻기 위하여 바닷물을 모아두는 웅덩이를 염정이라 하고, 그 여과 장치를 섯 또는 서치라 한다. 섯은 진흙을 바른 웅덩이 바닥에 둥근 나무를 깔고 대나무로 덮는다. 그 위에 밀짚을 엮어 여러 겹 깔면 완성된다. 

"울산 소금은 이래 굽는기라." 영상 속에서 노인이 말했다. 우선 염전 바닥에 수로를 만들어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평평하게 고른 다음, 소를 이용하여 하루 2~3회씩 써레질을 한다. 땅을 뒤엎고 고르며 뻔지질을 하면 짠 모래가 된다. 그것을 섯자리 위에 올리고 바닷물을 바가지로 떠서 콩나물시루에 물 주듯이 부으면 농도 진한 염수가 만들어진다.

섯은 지역마다 명칭이나 크기, 구조 등에서 차이가 나는데 전라도에서는 섯등, 경상도에서는 섯, 서산 태안에서는 간 통, 강원도에서는 간수 통이라 한다. 박지원이 지은 민웅전에는, 달이 하현이 되어 조수가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그 땅을 갈아 소금기 머금은 밭을 만들고, 거기서 받은 소금흙을 굽는다고 나와 있다. 

걸러야 하는 것이 어디 바닷물뿐일까. 조리로 쌀의 돌을, 필터로는 미세먼지를 거른다. 체로 모래를 걸러 사금도 채취하고 오미자를 걸러 발효액을 만들기도 한다. 거른다는 것은 쓸모없는 걸 버리고 필요한 것만을 골라내는 일이다. 내게도 걸러야 할 성질이 여러 개다.

엄마는 나를 보고 곧잘 '부랑타'고 한다. 어질지 못하고 말씨가 상냥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한번 말하면 되풀이하길 싫어하며, 두 번째 대답엔 언성이 약간 높아지고, 세 번째가 되면 짜증이 묻어난다. 여자란 자고로 사근사근한 말투와 조신한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엄마의 기준에 나는 부합하지 않는 딸이다. 

염수가 담긴 소금가마가 끓어오른다. 땔감인 마른 소깝은 송진을 포함하고 있어 불이 잘 붙는다. 통나무 장작은 화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좋으나 한 곳에 집중되는 단점이 있다. 첫 소금은 건짐이라 하여 양도 적고 아주 고급이다. 소량의 소금을 건져낸 후 다시 강하게 끓인다.

엄마는 키질을 잘했다. 콩깍지가 섞인 메주콩이나 마른 잎이 섞인 참깨를 키에 넣고 까불렀다. 리듬을 타고 키가 움직이는 동안 알곡은 아래로 내려와서 모이고 쭉정이는 위로 올라가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쭉정이만 버리고 알맹이만 남기는 키질은 신기에 가까웠다.

내 성격에서 어떤 걸 걸러낼까 생각해보니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다른 사람을 나의 관점으로 생각하며 판단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 결과가 좋지 않은 일은 외부 탓으로 돌리는 자기합리화, 쓸데없는 상상, 생각이 앞서나 끈기는 부족한 것 등 셀 수도 없이 많다. 

소금은 바다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나는 타인의 감정에 그런 적이 있었던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선 부정적인 면을 많이 보았고 내 편이 아니다싶으면 잘 돕지도 않았다.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의 방향에 따라 죄책감을 느끼거나 집중력을 잃기도 했다. 그것 또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솔가지에서 나온 녹색의 연기는 특별한 향을 입힌다. 소금이 목화송이처럼 피어오르면 불을 끄고 밀개로 끌어모은 후, 둥근 싸리 소쿠리에 담아 두어 시간 동안 물기를 뺀다. 가마에 남은 물은 조금 더 졸여져 두부를 만들 때 사용하는 간수가 된다.

소금은 우리 고유어이며 한자인 염鹽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녹봉으로 책정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양에서도 salt에서 파생된 단어가 급여를 의미하는 salary이다. 동서양에서 그 가치가 화폐로 인정받은 것은 깐깐한 여과를 통해서 얻은 것이어서가 아닐까. 

양수羊水는 바닷물과 같은 염도이고 혈액 속에도 소금이 포함되어 있다. 미라를 만들 때도 일주일 동안 소금물에 담근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염장청어로 부를 이루어 독립자금을 마련했고, 고구려는 맥궁을 만드는 물소의 뿔을 소금과 바꾸었다. 간디의 소금행진은 독립의 길이자 비폭력저항의 표상이었다. 이처럼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게 할 뿐 아니라 한 나라의 존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소금이 이토록이나 귀한 것은 스스로를 걸러 순도를 높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섯으로 걸러낼 수만 있다면 그 많던 단점들이 옅어지리라. 그 자리에 온순하고 상냥하며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는 내가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반을 따라 갖가지 소금이 진열되어 있다. 반짝이는 것이 어디 보석뿐이랴. 햇빛과 바람과 땀이 짭조름하게 녹아든 시간의 결정체가 전시장에 가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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