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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훈 수필가
오병훈 수필가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가을이다. 수확을 앞둔 들판에 서면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것 같다. 벼가 익어가는 냄새야말로 옛 사람들도 가장 값진 향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좋은 냄새를 향기라 한다. 향(香)은 벼화(禾) 아래 날일(日)이 모여 이루어진 글자다. 곧 따끈한 햇살 아래 벼가 익어가는 냄새야말로 고귀하고 값진 향기라고 생각했다. 가을 햇살 아래 곡식이 여물고 과일의 단맛이 어느 때보다 짙게 풍기는 때가 아닌가.


 예전에는 향기가 자신과 주변을 정갈하게 하고 신이 머무는 곳이라 생각했다. 동서양을 통 털어 종교의식에는 반드시 향을 피웠다. 불교나 기독교는 물론 원시 종교에서도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향기로운 나뭇가지 같은 것을 태워 좋은 냄새를 풍겼다. 그 대표적인 나무가 향나무 침향 백단향 같은 것이었다.


 도교에서는 향을 특히 귀한 것으로 생각하여 수행 장소에 반드시 좋은 냄새를 피웠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제사에 앞서 향을 피워 조상신이 머물도록 했다. 조선시대는 향나무 목제를 깎아낸 부스러기를 숯불에 넣어 연기를 피웠다. 이렇게 하는 방식으로 제사 때 향을 피우고 불전에도 향을 공양했다. 전통적으로 불교에서는 육법공양이라 하여 여섯 가지 물건을 불전에 올렸다. 향 등불 차 꽃 과일 쌀이다. 공양물 가운데 향을 첫 번째로 꼽았으니 그만큼 귀한 물건으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도교에서는 차와 향이 수행자에게 더없이 귀중한 물건이었다. 차를 마시며 수행처를 정갈하게 하기 위해 향을 사르는 일을 향도(香道)라 하였다. 우리 선조들도 향을 귀하게 생각하여 생활용품으로 널리 썼다. 합죽선의 선추에도 향을 담아 휴대했고 부녀자들은 노리개에 향을 담은 향낭을 차고 다녔다. 좋은 향은 양반의 전유물이었다. 워낙 값진 물건이라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귀한 향일수록 국내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중국에서 들여왔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도 향을 생활 속에서 두루 사용했다. 오월 오일 단오에는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고 구월 구일 중구절에는 산국이나 구절초를 삶은 물에 목욕을 했다. 이렇게 하면 몸에서 나는 땀냄새가 가시고 기생충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예부터 장례 때 향을 태워 좋은 연기를 피웠다. 방부 효과도 있었지만 나쁜 냄새를 없애고 주위를 깨끗하게 했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중국의 고승들이 입적하면 시신을 큰 독에 안치하고 황토와 숯가루 향료를 섞은 걸쭉한 방부제로 가득 채운다. 밀봉한 다음 3년을 두었다가 뚜껑을 열었을 때 시신이 썩지 않았으면 충분히 말려 9번 옻칠을 한다. 그리고 개금을 하면 생불이 되는데 비단으로 지은 장삼을 입혀 연화좌대에 안치한다. 곧 등신불이다. 중국에서는 최근까지도 생불을 모셨다. 저 신라 때 김교각 스님도 구화산으로 들어가 생불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향은 장례의식에 있어 중요한 재료였다. 특히 향료는 강력한 방부효과가 있어 미이라를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했다. 미이라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먼저 시신을 수술하여 내장을 분리한다. 뱃속에 향료와 솜을 채우고 충분히 건조시킨다. 그 다음 얼굴에 황금 가면을 씌우고 붕대로 온몸을 감아 목제 관에 안치한다. 이집트의 미이라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썩지 않고 남아 있어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었다. 


 아라비아를 비롯한 소아시아 지방에서 나는 향의 원료를 이집트에서 수입했다. 대부분 종교의식에 향을 피워 나쁜 냄새를 없애고 신을 기쁘게 한다고 믿은 때문이다. 또 향을 피울 때 퍼지는 연기를 통해 신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향을 만드는 재료는 많다. 주로 식물의 수액이 굳은 것 목재 꽃 껍질 나뭇잎이나 뿌리가 향료의 재료였다. 또 동물의 변, 사향노루의 배꼽 같은 것도 향료가 되었다. 향기를 가진 잎이나 목재를 태워 좋은 연기가 주변에 퍼지도록 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베들레헴을 찾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가지고 간 유향과 몰약도 향료였다. 이러한 향은 냄새 이상의 치료용 의약품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쑥을 말려 뜸으로 이용하고 감태나무 잎을 말려 모기향 제조에 쓰기도 한다. 저 유명한 샤넬5라는 향수야말로 여성들이 갖고 싶어 하는 향수가 아닌가. 요즘에는 남자 중에도 향수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무리 좋은 향수가 있다고 해도 인정미 넘치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기만한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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