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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할 일이 없으면 심심할 것이다. 그러므로 할 일을 만들어야 한다. 그야말로 소일이다. 시간은 많은데 뭘 할지 아무런 할 일이 없다면 사람이 무기력해진다. 정신적으로도 우울해질 수 있다. 해야 할 일이라고 있다. 안 하면 스트레스로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어떻게 시도해야 할지, 어떻게 부딪혀야 할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두 스트레스다. 좋은 과정과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어 약간 두려움도 있는 것이다.  


 할 일은 집안 청소부터 한끼 밥 먹는 것 등,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들이다. 하면 좋고 안 해도 크게 낭패볼일은 아닌 것이다. 오늘 안 해도 되고 며칠 미뤄도 된다. 해야 할 일은 때가 정해져 있다. 관련 상대방의 시간에도 맞춰야 하고 일의 유효기간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니 미룰 수도 없다. 남에게 부탁하거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해야할 일이라면 더 스트레스 받는다. 


 올해 104세 김형석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60세에서 75세라고 했다. 사람마다 기준과 철학이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할 일이 있다 중에서 '하고 싶은 것 하기, 하고 싶지 않은 것 안 하기'라고 본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일어나도 되고 안 일어나고 더 게으름을 피워도 되는 것이다.


 직장 생활할 때는 칼같이 일어나서 오늘 하루 전쟁터에 나가듯이 비장한 각오로 집을 나섰다. 직장생활 할 때 지각이란 경쟁에서의 도태를 뜻했다. 조퇴나 결근은 정당한 사유가 있어도 전상자 취급을 받았다. 업무 또한 치열한 경쟁이었다. 회사도 살아야 하고 나도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아야 했다. 은퇴 후의 하루 생활은 좋은 일을 생각하며 나서고 싶은 시간에 집을 나선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그렇고 취미생활도 그렇다. 하고 싶은 것만 골라 하면 되는 것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안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해야 할 일 중에 국민의 4대 의무라는 국방, 교육, 근로, 납세 의무도 성실히 이행했다. 납세 의무는 때마다 재산세를 내고 있으므로 아직 진행중이지만, 다른 것은 더 이상 의무 사항이 아니다. 


 부부관계도 젊은 시절에는 삶의 즐거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자녀도 만들어야 하고 배우자와의 사랑 방식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그것도 시들해지면서 부부관계조차 의무 방어전이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그런데 60이 넘으면 섹스리스라도 용서 받을 수 있다. 부부라도 각방을 쓰며 여자가 먼저 문을 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의무 방어전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이었던 돈을 벌어와야 할 의무도 없다.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간 열심히 일해서 축적해 놓은 재산이 있으므로 더 벌어 오지 않아도 노후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축적해 놓은 것에는 경험도 있고 지식도 있다. 대우 받으며 사회에 환원한다. 돈을 대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도 없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사람 만나는 것도 좋은 사람은 만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안 만나도 된다. 직장생활 할 때처럼 무조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도 없다. 좋은 사람만 만나기에도 남은 여생이 그리 길지 않다. 다행히 아직 건강하다. 산에 가고 싶으면 산에 가고 바다에 가고 싶으면 가면 된다. 물론 안 가도 된다. 집을 나서면 전철은 경로우대로 무료이고 전철 경로석은 비워져 있을 때가 많다. 어지간한 공원이나 공공장소도 경로우대로 무료다. 당구장에 가도 경로우대라며 깎아 준다. 


 자녀들도 한창 사회 생활을 할 때이므로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된다. 알아서 잘 해내고 있다. 손주들도 잘 큰다.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며 인생을 정리하는 기분은 저녁 노을을 한가롭게 구경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지금 70세이므로 가장 행복한 나이 60세~75세의 정점에 와 있다. 해야 할 일은 점점 줄어 들고 심심하지 않게 할 일만 찾으면 된다. 그나마도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큰 실수만 안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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