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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가끝나면 / 황선미 글·김동성 그림
소꿉놀이가끝나면 / 황선미 글·김동성 그림

'나는 심심하고 가엾은 여섯 살이에요.'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섯 살 연지가 가엾은 이유는 이제 소꿉놀이가 시시해진 언니가 더 이상 함께 놀아주지 않고, 엄마는 엄마 일을 하느라 놀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엾은 여섯 살 아이가 비 온 뒤 책에서만 보던 무지개를 발견하자 호기심에 달려갑니다. 그러나 무지개는 숨은 데를 들키고 싶지 않은지 점점 흐려집니다.


 '커다란 그늘나무 아래에서 그만 무지개를 놓치고 말았어요.대신 나를 보고 서 있는 아이를 만났어요. 구름 뒤에서 막 나온 해가 그 아이 어깨에 걸려 있는 것 같았어요.'


 남자아이 이름은 지오, 무지개 소년이었을까요. 지오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 같은 존재입니다. 연지는 남자 친구와 함께 작은 우주 하나를 이루고 이끌어 갑니다. 
 그건 소꿉놀이였는데, 주변의 모든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내가 원하는 그 무엇들이 되게 합니다. 


 엄마를 잃은 슬픔에 감기 걸린 아기 쥐와 너무 심심해서 감기에 걸린 인형에게 솔잎 주사를 놓은 뒤 나란히 잠재우기도 합니다. 인형이 심심해서, 그것도 너무너무 심심해서 감기 걸린 거라고 말하는 연지, 인형을 자신과 동일시 한 귀여운 연민이겠죠. 물론 어린아이 입장에선 가장 절실한 문제이겠지만요. 


 '무지개가 선명하게 뜨던 날,토끼풀 꽃을 엮어서 손목에 묶고 원추리 한 송이를 귀에 꽂았어요. 팔짱을 끼고 그늘나무 한 바퀴를 돌며 결혼 행진곡을 불렀어요.'
 이성의 만남은 사랑의 꽃을 피우는 게 자연의 순리. 조그만 여자아이와 조그만 남자아이도 그 나이에 알맞은 여러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엄마 아빠의 역할이 즐거운 소꿉놀이 중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게 되죠.


 "어? 며느리배꼽이다." 지오가 말했었지요. 며느리배꼽 열매를 보는 건 행운이라고. 동그란 받침 하나에 연두색, 분홍색, 파란색, 보라색 열매가 졸망졸망해요. 나는 활짝 핀 개망초, 잘 익은 까마중, 알알이 여문 산딸기를 땄어요. 산새콩의 콩깍지가 단단하게 여물어서 한 주먹이나 땄지요. 지오는 가재울에 물고기를 잡으러 갔어요.'


 살구가 노랗게 익으면서 시작된 뜨거운 여름은, 연지와 지오가 열심히 소꿉 살림을 사는 동안 갖가지 열매를 단단하게 익혔습니다. 지오가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아 오자 연지는 진짜 요리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칼을 물고기 등에 댔어요.장난감이지만 톱날이 있는 칼이에요.칼을 꼭 쥐고 힘주어 미는데,으드득?물고기가 파르르 떨었어요.나는 울먹이며 손을 바지에 문지르고 또 문질렀어요.손바닥에 남은 물고기의 떨림과 끈적임이 없어지지 않았어요.'


 손바닥에 남은 물고기의 떨림과 끈적임은 두 아이가 소꿉놀이를 통해 세웠던 작은 우주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신호입니다. 연지는 더 이상 함께 소꿉놀이해주지 않는 언니가 섭섭하지 않습니다. 언니만큼 몸도 마음도 성장했으니까요.  

조희양 아동문학가
조희양 아동문학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인데요. 연지처럼 나이에 맞추어 성장하지 못한 어른도 있더라고요. 
 그는 어린 시절, 크고 작은 사금파리로 어디든 살림을 차린 소꿉놀이 선수였는데요. 선수였던 것만큼 그 놀이가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차마 보낼 수가 없어서 마음 옷장에 숨겨두었는데요. 그 소꿉쟁이, 흰머리가 듬성듬성 돋는 세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소꿉질합니다. 


 여섯 살짜리 아이 손에 알맞은 찻잔을 오밀조밀 차려놓고, 인형 얼굴을 닦이고 머리를 묶으며 노는 어른이. '어른이'는 어린이와 어른을 합친 신조어라지요. 그래도 여러운 건 아닌지 혼자 그리 논다지요. 저 안의 소꿉놀이 선수만 살그머니 불러내서요. 조희양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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